7개 질병군에 대한 포괄수가제 확대 강행이 개원가에 충격적으로 반향되고 있어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의 조짐이 일고 있다. 특히 醫·政, 醫·病간 갈등에 골까지 새겨지면서 감성적 대결구도의 양상 마저 띄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곳은 이번 포괄수가제의 주역격인 개원가다. [5.30] 결정이 밝혀지자, 대다수 개원가 단체는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개별 행동을 자제하고 신임 의협 집행부에 힘을 보태고 따르자는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다. 개원가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의료제도나 건강보험제도 등에 변화가 오면 각과 개원의사회나 젊은 층의 개원가 단체가 의협이나 시도의사회의 눈치나 입장 볼 것 없이 즉각 목소리를 냈었으나, 이번 만은 달리 모든 것을 의협에 따르겠다는 묵시적 일관성이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가 의사 사회 전체에 던져준 충격인 만큼 새 집행부에 힘을 보태자는 의도로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모처럼 의협 집행부가 개원가로 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포괄수가제문제가 제도 자체와 운영 주체인 건정심에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연관된 대상이 전 국민이라는 점, 그리고 최근까지 의료계와 의사에 대한 사회인식이 그릇돼 있었다는 갖가지 복합적 함수구조를 많은 의료인들이 의식하고 있는데서 나온 신중한 자세로 분석된다.
노환규 집행부 역시 이 문제 해결에 여느 때와 달리 장고를 하면서 섣부른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그가 누누이 지적해온 국민을 위한 의료와 의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흔들리지 않으면서 문제해결에 접근해 나갈 방도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이 제도에 매력을 느낄 대목이 많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본인부담금의 인하와 이용의 편의성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의료계가 지금까지 지적해온 전문가의 견해배제, 건정심의 구조적 문제점, 의료의 저질화 등은 국민으로부터 절대적 호응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과거의 대응 관점과 자세가 다르기 때문에 대응과 홍보할 시간적 여유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국면으로 몰린 점이다. 이 대목은 의협 성명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너무나 오랫동안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국민의 가장 고귀한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의사로서 전문의학지식과 의사의 양심에 따라 선보완을 요구하는 것이 잘 먹혀들어 가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의협이 내놓은 카드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이제부터라도 의협은 전문가 단체다운 자세를 조금도 그릇치지 않고 문제 해결과 대국민 호소를 더욱 적극화해 줄 것을 의료계에서 바라고 있다.
특히 이 제도와 운영에는 문제와 취약점이 많은데다 의료계 일원인 병협까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한 상태기 때문에 그 만큼 취약점도 많이 노출된 상태라는 것이 의료계의 지배적 견해다.
단적으로 [5.30]결정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수술을 하는데 집도할 의사를 참여시키지 않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7월 이전에 준비할 더 많은 대목에서 의학전문가의 견해가 '필수조건'인데, 행정력으로 몰아 붙이기만 해서 이뤄질 일이 아니다.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대단히 다행스런 현상은 모처럼 개원가가 새 집행부를 신뢰하면서 힘을 보태겠다고 벼르고 있는 점이다.
포괄수가제 강제시행에 가장 강하게 반발해온 안과의사회를 대표해 이주현 보험이사는 수정체 수술 10% 인하는 안과를 10년 전으로 후퇴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이 보험이사는 “상처 부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의료장비를 사용하게 되고 그렇다보면 자연스레 진료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데 정부는 과잉진료라며 무조건 수가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안과 의사들은 기계 투자비 회수, 행위별 수가 전환시 복지부 등의 압박을 우려해 포괄수가제 당연 적용 전부터 100% 포괄수가제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포괄수가제를 통해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만이라도 보존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포괄수가제에 대한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 역시 포괄수가제 시행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의협의 지침대로 따르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의사들이 반대하는 포괄수가제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홍보도 하지 않은 채 시행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국민들은 의료비가 저렴해져 지금 당장은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포괄수가제 시행으로 진료 질 저하, 중증 환자 기피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한의원협회(회장 윤용선)는 30일 긴급 성명을 통해 “건정심은 선보완 후시행의 의협 의견을 무시한 채 의협이 빠진 상태에서 더 싼 진료를 강요하는 강제포괄수가제를 통과시켰다”며 “어려움에 처한 의료계에 한 번 더 힘겨운 책임과 버거운 도덕적 멍에를 씌우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일괄되게 의료계의 보편적 권리를 무시하고 끝내 이성과 도덕성을 잃어버린 판단을 한 과거의 건정심은 이젠 해체돼야 한다”며 “공정한 협의구조를 갖춘 건정심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의사총연합 이주병 공동대표는 “복지부의 이 같은 행동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이제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의료 질 저하와 피해 뿐”이라며 “그 동안 의협의 포괄수가제 반대는 의사들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의료 질 저하와 신의료기술 개발을 막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누가 쓸데없이 신의료기술을 도입하겠냐”며 “의사들은 포괄수가제 수익구조에 맞춰 일하면 된다. 국민 건강 생각 없이 돈이 적게 나갈 수 있도록 값이 저렴한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민들은 지금 당장은 병원비가 저렴해져 좋아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료 질이 떨어졌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면서 “포괄수가제 시행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원의사회장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건정심 24명 위원 중 의료 공급자 3명인 것은 너무 불합리한 처사로 의사회는 건정심을 탈퇴한 의협을 지지한다”며 “앞으로 의협이 실력행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의사회는 의협 행동 지침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30일 건정심에서 의협과 동반자 입장에서 행보를 같이하기로 한 병협이 포괄수가제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나며 향후 다수의 현안을 앞둔 상태에서 의료계 갈등으로 번질지 우려의 시각도 나오고 있다.
노환규 회장은 취임 간담회에서 병협과 협조할 부분은 적극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김윤수 병협회장도 취임간담회를 통해 의협과의 공조를 강조한 바 있기 때문에 병원계의 이번 결정은 공조체계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전 토론회에서 의료제공자 입장에서 발표한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이 현행 질병군 포괄수가 수준이 미흡해 수가재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어 병협의 찬성을 예상치 못한 터라 의협으로서도 당황스런 분위기다.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이번 병협 행보에 대해 “앞서 만났을 때 반대 입장을 밝힌바 있는데 내부사정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이라며 말을 아꼈다.
송 대변인은 향후 병협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경영자와 의사라는 입장차이가 있어 각기 다른 방향도 있을 것”이라며 다른 입장을 보일수도 있음을 밝히고 “그러나 모두 의사들이 중심이고 대표단체임에는 틀림없다”며 너무 분열로 몰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반면 의협 등이 이러한 분위기를 보이는 가운데도 병협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공식 접촉 등 사태 추이에 따라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