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 3개월을 맞아 손해배상 대불금 지급문제가 개원가의 긴급 현안으로 급부상하면서 분쟁조정법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최근 개원가에 난데없이 건보공단에서 지급할 요양급여비 중 입부 의료분쟁 손해배상 대불금을 의료분쟁조정원에서 징수해 가겠다는 통보에서 야기되었다.
의료분쟁에 따른 환자와 의료기관의 고통과 피해를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지난 6월부터 손해배상 대불금 지급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지불해야할 요양급여비용의 일부를 원천징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손해배상 대불금 제도란 의료분쟁중재원의 조정을 거쳐 손해배상금이 확정됐으나 요양기관이 배상금을 지불하지 못한 경우, 중재원이 이를 대신 지급한 뒤 나중에 해당 요양기관으로부터 돌려받는 제도다.
더구나 분쟁조정법에서는 손해배상 대불금과 관련해 요양기관에게 불리한 몇 가지 문제조항을 명문화한데서 분쟁의 불씨를 잉태시켰다. 즉 ▲의료분쟁중재원이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기 위해 마련할 재원을 보건의료기관개설자가 부담토록 명시한 점 ▲징수 방법은 건보공단이 요양기관에 지급해야 할 요양급여비용의 일부를 가져가는 방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점 등이다.
이 규정에 따라 의료분쟁중재원이 추산하고 있는 대불에 필요한 적립목표액은 약 34억9000만원이다. 위험도에 따른 상대가치 금액기준에 따라 의원급 의료기관은 약 3~10만원, 병원급 100만원, 상급종합병원 600만원을 각각 부담토록 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손해배상 대불금 지급에 필요한 재원 약 35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6월 1일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의원에 지급해야 할 요양급여 비용의 일부를 원천징수한다는 내용의 공고를 이미 발표했다.
의료계는 이러한 문제점이 있는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해 '독소조항'이 많다고 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손해배상 대불금 재원마련을 위한 원천징수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때마침 의협은 노환규 신임 회장이 취잉하기 직전으로 의협인수위원회가 지난 5월 31일 서둘러 서울행정법원에 중재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대불 시행 및 운영방안 공고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해당 공고는 위헌 소지가 크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의협은 소장을 통해 "조세 성격과 유사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라고 지적하고 ▲부담금의 상한 및 산출기준 ▲부과 요건 및 방법 ▲납부 시기 및 기한 등 기본적인 사항을 모법에서 규정한 후 하위법령에 위임해야 하는데 대통령령으로 위임함으로써 행정재량권을 너무 광범위하게 부여했다는 점을 들어 "법률 유보 및 법률의 명확성, 포괄위임 입법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의협은 이외에도 ▲대불금 재원의 확실한 확보라는 공익적 목적을 앞세워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요양급여비용이라는 특정 재산을 임의로 선정해 손해배상금 대불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점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는 보건의료기관 개설자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인, 특히 환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제도인데도 보건의료기관 개설자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
▲보건의료기관의 과실 유무 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손해배상에 필요한 재원을 납부토록 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칙의 원리에도 반한다는 문제점을 들고 나왔다.
바로 이 같은 독소조항이 최근 개원가에 현실문제로 대두되어 의원급의료기관 의사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된 배경이다. 병원급 이상은 병원 대표 측에서 대납하기 때문에 별 부담이 없지만, 의원급에서는 직접 금액을 부담해야 된다는 점에서 피부에 와 닿는 감성문제까지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이 자주 방문하는 각종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게재돼 있는 글들을 보면, 원천징수를 강행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성토하는 내용의 글들이 자주 보인다.
의료계에서 더욱 경계하고 있는 것은 부담액의 증가.
현재는 제도 초기이기 때문에 35억 원 이내로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된다면 원천징수 금액도 늘어나 의료기관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만에 따라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지난 5월말, 손해배상대불금 징수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 및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으나 기각되고 말았다.
의협은 추가소송을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손해배상금 대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제47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행정법원에 신청한 상태다.
강제징수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 시도의사회 및 산부인과의사회·학회 등 각 산하단체 등을 통해 현재 30여명의 소송당사자를 모집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31일, 의협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린 법원의 입장을 지켜봤을 때 재판결과가 얼마나 의료계에 유리하게 결정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