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사들이 참여하는 대정부 규탄대회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의료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의료제도 바로세우기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노환규, 이하 비대위)’를 구성하고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국의사대회를 오는 15일(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이번 전국의사대회는 지난해 4월 강경론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되어 임기 절반을 넘긴 노환규 의협 집행부의 조직운영능력을 점검하는 중간 평가 성격이 짙다. 때문에 비대위는 전국 의사들의 참여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환규 위원장은 되도록 많은 의사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지난 4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의료제도 바로세우기를 위한 의사들의 행진’을 진행하며 개원의와 전공의 등 지역 의사들을 만나 투쟁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비대위가 목표로 세운 의사회원들의 참여인원은 2만명. 하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이 가로막고 있어 의협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먼저 대학병원 등 병원장들과 의대교수들의 참여를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지만 각 병원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도 투쟁명분에는 공감한다고 밝혔지만 별다른 제스처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의사협회는 BIG5로 불리는 대형병원을 비롯한 병원장들에게 공문을 통해 투쟁에 참여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고 의대교수들은 오는 15일 전국의사대회를 개최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일부 병원장이나 교수들은 비대위가 이번 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정부의 원격의료도입에 찬성의사를 밝히며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하는 등 의협과 반대행보를 펼치고 있는 상황.
한 병원계 인사는 “투쟁을 해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잊을만하면 또다시 길거리로 나서 투쟁을 하는 의사들을 과연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걱정이다”며 참여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의협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개원의들의 반응도 그리 뜨겁지만은 않다.
한 개원의사회의 중책을 맡고 있는 의료계 인사는 투쟁참여의사를 밝히기는 커녕 “의협회장이 공금횡령 사건 무마를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영리병원 반대를 내세운 투쟁명분에도 공감할 수 없다고 밝힌 이들도 있다.
일부 의사들은 “이번 투쟁의 제1 목표를 세우면서 일방적으로 영리병원을 반대한다고 정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지난 28일 성명을 통해 밝혀 영리병원 반대를 외치며 보건의료노조 등과 동반행보를 지속하고 있는 의협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라 할 수 있는 전국의사총연합도 이번만큼은 무조건 노 회장을 따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환규 회장은 강성 의사단체인 전의총 대표 출신으로 전의총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전의총 회원들은 노 회장의 당선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며 크게 기여했을뿐만 아니라 당선 이후에도 의협의 2중대라고 불릴 만큼 노환규 회장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일부 전의총 회원들마저도 비판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지난 8일 한 전의총 회원은 SNS를 통해 투쟁동참을 호소하는 노환규 위원장에 대해 “개인 홈피에 글을 쓰지 말라는 회원들의 간절한 권유를 이젠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다른 회원들은 댓글을 통해 “워낙 보여주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 자제가 힘들다”, “본인의 성과를 과시하지 않으면 성에 안차는 사람을 주위에서 간혹 본다”라고 말하는 등 조소를 보냈다.
투쟁 이후에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지적한 의사회원들도 있다.
한 의사회원은 의협플라자를 통해 “15일 전국의사대회에 2만명이 설사 다 모였다고 치자. 그 다음 행동은 무엇인가?”라며 투쟁 이후의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업준비조차 없어 내부동력은 하나도 없고 손발은 지금 다 묶여져 있는데 손발부터 풀려는 노력도 전혀 없이 무슨 투쟁인가?”라고 비대위의 행보를 강하게 질타했다.
전국의사대회를 곧 앞두고 이처럼 의사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국시도의사회장이나 서울시의사회, 경기도의사회 등 지역의사회는 대체적으로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어 이들이 가장 큰 지원군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의사회 임수흠 회장은 지난 6일 삭발까지 감행하며 “투쟁을 앞두고 모든 의사들이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경기도의사회도 투쟁에 참여할 것을 공식적으로 결의했다. 전국시도의사회장도 이번만큼은 관치의료를 종식시킬 때라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일부 민초 의사들은 이번 전국의사대회가 꼭 성공해야 한다며 자신이 속한 지역의사회나 학회 등에 적극적으로 투쟁에 동참할 것을 회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지역의사회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투쟁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한 개원의는 “전화를 받고 대체로 회원들은 지지의사를 보냈지만 일부 회원들은 연수강좌와 겹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해 당황했다. 부당한 의료정책에 대항하는 전국의사대회가 연수강좌 하나보다 못하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이번 전국의사대회는 노환규 집행부에 대한 회원들의 신뢰와 조직운영능력을 검증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다시 말하면 비대위가 목표로 내세운 2만명에 크게 모자라기라도 할 경우 의협 집행부가 추진동력을 잃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임기 절반을 넘긴 현 의협 집행부는 강성행보를 펼치며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출범 초기보다 회원들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말이 오가는 상황으로 이번 투쟁에 실패할 경우 정부와의 협상력이 크게 저하되어 코너에 몰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대정부 투쟁대회의 성공여부는 이래저래 의료계 안팍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 의료계 인사는 “의료계 내에 여러 가지 의견이 충돌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번 투쟁이 성공해야 관치의료의 폐해를 종식시키고 의료제도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금은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의사들이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