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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요양기관 당연지정에 대한 문제

김주경 의사협회 대변인


들어가며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벌써부터 ‘의료보험’이 인터넷과 언론에서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의료보험에 대해 아직 정확한 구상이나 대책을 만들어 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부의 집단에서 의료계가 내놓은 새로운 대안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부터 내는 형국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비판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Sicko’를 인용하며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새로운 체제로 개편되었을 때의 상황을 예시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국민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심으며, 논쟁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아직 뚜렷한 정책 방향도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근거 없는 세찬 공격들이 쏟아지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문이 든다.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정책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많은 발전을 이룬 한국에서 한국의 의료보험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앞으로 5년간에 걸쳐 새로운 정책을 짜야하는 새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모든 논의를 차단하고자 하는 조직적인 반대와 비난만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기에 한국의 의료보험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새 판을 짤 수 있는 논의가 이번 정부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보며, 문제의식과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몸말
건강보험법 제40조에 의해 의료기관은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들은 우선,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전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대표적 규제사항으로, 제한된 보험급여 범위 내에서의 평균적 의료서비스만을 인정하여, 국민의 선택권과 의료인의 진료권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 향상 및 개발에 대한 유인동기를 차단하여, 의료의 하향 평준화와 경쟁력 상실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의료인의 의료기술 발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의료의 질적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 분담을 통해 의료서비스 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의 필요성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파탄 이후에는 모든 의료정책을 재정절감에만 치우친 채 의료계에 대한 통제와 규제일변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특히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으로 시행된 상대가치제도와 수가계약제는 본연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등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그 한계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의료계는 지난 2000년 위헌소송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강제지정제도의 문제점이 공론화된 바 있다.

2002년 10월에 받은 최종적인 헌법 재판소의 최종 판결문에서는 “국가 또한 강제지정제를 유지하는 한 진료과목별 수가의 불균형 및 동일 진료과목 내 행위별 수가간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하고, 의학의 발전에 부응하는 진료수가의 조정을 통한 의료의 질적 수준의 다양함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여야 하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거나 보험급여율을 높이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민간의료기관이 의료보험체계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당시 판결문에서 정부로 하여금 현행 의료수가의 불합리성과 공공의료기관의 부족 등 열악한 의료여건을 시정토록 권고하는 등 강제지정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러한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제도 개선이나 개혁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예를 많이 든다. 그리고 얼마 전 미국의 유명 감독 ‘마이클 무어’가 만들어 유명해진 영화 ‘식코(SICKO)’가 근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든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영화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미국은 간단한 수술에도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보험료도 비싸며 그나마도 보험 미가입자가 수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유럽이나 캐나다, 심지어 쿠바는 무상의료 정신을 구현하며 병자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을 다닌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를 피상적으로 바라보며 미국의 의료는 한국이 답습해서는 안 되는 반대의 그곳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렇게 싫어하는 미국식 의료보험제도가 이야기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미국의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왔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에서 케인즈 주의적 국가관리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1970~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당시 영국 쌔처 정부나 미국의 닉슨 정부는 정부의 공적부조를 비효율의 본산지, 정부재정의 기생충으로 공격하면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강력한 저항으로 여전히 ‘국민건강서비스(NHS, National Healthcare Service)’가 존재하고 있지만 쌔처의 민영화 드라이브 기조는 여전히 이어져 NHS도 꾸준히 민영화되고 있는 추세다.

공공의료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영국의 NHS도 민영화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거시적으로 자유화, 세계화에 따라 자본의 수익은 증가하는 반면 그에 대한 모자라는 자금들이 세금으로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어 공공서비스 재원의 고갈에 한 몫 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은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재원고갈이 공공서비스의 비효율을 증명한다면서 민영화를 주장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더군다나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예산, SOC 예산 등으로 말미암아 복지예산 비중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의료뿐 아니라 허다한 공공서비스가 경제규모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제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여러 가지 원인들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우리가 내는 세금들의 세율 자체가 낮아서일 수도 있고, 자영업자나 고소득층의 탈세 때문일 수도 있고, 친기업적인 조세정책으로 세수가 줄어서 일수도 있고, 복지예산을 삭감하여 국방비 등 다른 곳에 전용해서일 수도 있고, 노령인구가 늘고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인구구조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언급한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식코(Sicko)에서 마이클 무어는 영국, 캐나다, 쿠바의 겉만 소개한다. 즉, 의료서비스 현장만을 소개했지 그 멋진 서비스들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어떻게 여러 계층의 국민과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비판받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어떠한 위기에 처해있는지, 그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답을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 오직 미국의 의료시스템의 문제만 자신의 관점으로 비판할 뿐이다.

닫으며
근래 인터넷과 언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건강보험에 대한 논의에서 잘못된 오해가 있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자가 이번 대선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의료보험 체계를 바꾸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국민연금 개혁에 모든 노력을 집중했던 것을 본다면 다음 정권에서 재원이 확보되지 않은 공공서비스는 끊임없이 자본과 정치권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대안을 제시하자면 의료체계를 비롯한 사회공공성에 대한 예산확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여러 가지 비용을 사회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비용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제대로 비용의 문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이 혜택을 줄 수 있는 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재정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선심성으로 내걸어온 보험혜택을 접고, 가장 필요한 보험혜택을 정하고 그 부분에 대한 보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원가의 70%정도밖에 되지 않는 저수가 체제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타 국가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의사들을 매도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면, 결국 시장의 자율성에 맡기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정부가 의료가 산업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용의 측면을 공급자의 문제로 확대해석해서 건강보험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강압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의료 산업화의 기조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현재 의료보험 정책에 잘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좀 더 메리트를 줄 수 있어야 의학이 발전하고, 국민의 건강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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