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 보건 재원이 대폭 삭감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광범위한 3대 감염병, 에이즈·결핵·말라리아 종식을 위한 노력이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지난 1월, 글로벌 보건 프로그램 최대 공여국이었던 미국은 국제 원조 전면 중단 및 검토를 발표했다. 그 결과,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에이즈·결핵·말라리아 종식을 위한 글로벌펀드(Global Fund to Fight AIDS, Tuberculosis and Malaria)에 약정된 60억달러 중 절반인 약 30억달러가 여전히 집행되지 않고 있다. 또한,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주요 공여국들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글로벌펀드의 차기 3개년 재원 조성 및 집행 주기에 대한 구체적 약정 내용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펀드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취약한 보건 시스템을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글로벌펀드에 조달되는 재원은 약품 및 진단검사 장비 구입, 보건 인력 임금 지불, 질병 예방 활동 유지 등에 사용된다. 향후 몇 주, 몇 달 내에 충분한 재원 조성 및 집행 공약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질병 및 사망률 감소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위험이 있다.
매년 수만명의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이하 HIV) 감염 환자와 결핵 환자, 300만명 이상의 말라리아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국경없는의사회는 글로벌펀드에 대한 지원 약화가 가져올 파급 효과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글로벌펀드의 재원 지원을 받지 않지만, 이에 의존하는 수많은 지역사회 기반 보건 단체들이 재정 불확실성과 감축 위기 속에서 이미 사업 축소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플로레스(Antonio Flores) 국경없는의사회 HIV·결핵 선임 자문은 “재원 삭감의 여파는 이미 드러나고 있다”며 “온두라스에서는 대통령 에이즈 구호 비상계획(President’s Emergency Plan for AIDS Relief, PEPFAR)의 갑작스러운 재원 삭감으로 HIV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또한 “환자들은 하루아침에 노출 전 예방 요법(pre-exposure prophylaxis, 이하 PrEP) 접근성을 잃었고, 보건 인력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중증 기회감염으로 병원을 다시 찾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지프 와토(Joseph Wato) 카메룬 보건재정 및 보편적 의료보장을 위한 시민사회연합(COFIS-CSU) 회장은 “글로벌펀드의 제8차 재원 약정 회의가 무산된다면 수십 년간 이어온 성과가 무너지고, 말라리아 환자가 다시 급증하며 불필요한 희생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여러 현장은 해당 국가의 재원 동원만으로 국제 보건 재정을 대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치명적인 공백(Deadly Gaps)”이 보여주듯, 비용 부담은 갈수록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최근 재원 삭감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전 세계 공동체를 대표해 한국 정부가 글로벌 펀드에 대한 필수적 지원을 계속 이어가 줄 것을 촉구한다”며 “HIV, 결핵, 말라리아와의 싸움은 전 세계가 직면한 우리 세대의 과제이며, 그 끝은 아직 멀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