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과의 수가협상이 결렬됐던 의협과 병협에 페널티를 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오히려 수가가 인상, 복지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는 유형별 수가협상 이후 처음 있는 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25일, 약제비를 절감한다는 조건아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의 내년도 수가를 인상했다. 이로써 내년도 의협과 병협은 각각 3%, 1.4% 수가가 인상됐다.
협상결렬 페널티 원칙 어디로 갔나?
특히 이번 건정심의 결정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수가협상이 결렬된 단체에 대해 처음으로 페널티가 아닌 그보다 더 높은 수가를 인상해주었다는 선례를 남겼다. 유형별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후 공단과 협상이 결렬된 단체의 경우 마지막으로 제시된 수치보다 낮은 수가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
이에 가입자들은 이번 결과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우선 가입자측은 모든 책임은 보건복지가족부에 있다는 모습이다. 즉, 복지부가 나서서 기존 원칙을 깼다는 것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연구소장은 “이런 식으로 복지부가 원칙을 깬다면 앞으로 수가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모든 것이 복지부의 책임이고 너무나 웃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며 이번 건정심의 결정에 허탈감을 나타냈다.
김창보 연구소장은 결국 복지부가 보험료를 인상해 의료계 수가인상분에 사용하려는 의도라는 입장이다. 거기다 약제비를 절감하겠다는 조건으로 수가를 인상해 준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민들은 임금동결로 인해 실질소득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의사들이 얼마나 힘이들다고 수가를 이렇게 올려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말 한심하다. 이럴 바엔 복지부는 건정심을 해체하고 모두 다 알아서 하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사실상 보험료가 4.9% 인상됐다. 보험급여가 확대된 금액도 2000억 원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 금액은 보험료 인상률의 1%도 안 된다. 결국, 보험료를 인상해 수가를 보전해주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가입자단체 관계자 역시 이번 건정심의 결정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무엇보다도 협상결렬 단체에 페널티가 아닌 조건부 수가인상을 인정, 향후 수가협상의 불투명성을 꼽았다.
그는 “이번 수가협상은 향후 유형을 더 세분화할 수 있도록 안착을 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결국 이번 결과로 인해 내년도에 유형별 수가계약을 지속할 것인지 조차 불투명하게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공단과 일찌감치 수가협상을 마무리한 공급자단체들의 향후 반응에도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한 공급자단체 관계자는 “공단과의 협상이 매우 불합리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타결했다. 그런데 건정심의 이번 결과를 보니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즉, 협상이 결렬된 단체에는 패널티를 부여한다는 협박(?)이 말 그대로 협박에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액개념 약제비 절감안…만약 절감 못하면?
이번 건정심에서 복지부가 의협과 병협의 내년도 수가인상의 부대조건으로 내건 것은 총액 개념의 ‘약제비 절감’이었다. 가입자단체 관계자는 진료비에 대한 총액계약제로의 전환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약제비 부분에 대한 총액개념의 도입은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가입자단체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약제비 절감이라는 부분에 총액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다만, 약제비와 함께 진료비도 총액으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의협과 병협에 수가인상의 부대조건으로 2010년의 병원과 의원 부문 약품비 절감 여부를 평가해 2011년 수가계약시 반영하기로 했다.
단, 2011년 수가계약이 체결될 경우 체결된 인상률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수가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병원 1.2%, 의원 2.7% 인상률을 기준으로 계산하게 된다.
또한, 복지부는 “의사와 의료기관의 노력에 의한 약품비 절감 효과만을 포함하고, 정부의 약가 인하정책으로 인한 절감 효과는 제외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한편, 이날 건정심에 참석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의협과 병협은 복지부의 이 같은 제의에 난색을 나타냈으나, 수용하지 않을 경우 패널티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에 의해 결국 수용했다고 전했다.
복지부ㆍ공단 총액계약제 의지 없었다…국고지원 언제쯤?
올해 수가협상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아졌던 것은 다름 아닌 ‘총액계약제’였다. 하지만 이번 수가협상에서 총액계약제 문제는 수면위로 부상했다가 금세 가라앉았다. 가입자단체가 이번 수가협상 결과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바로 ‘총액계약제’부분이다.
총액계약제와 관련해 가입자단체 관계자는 “복지부나 공단은 총액계약제에 대한 준비나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면서 “수가협상 과정에서 몇몇 공급자단체는 총액계약제로의 전환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확실하게 총액계약제로의 전환을 꾀했어야 했다. 이에 대한 복지부나 공단은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울러, 이번에도 국고지원금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 또한 이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가입자단체 관계자는 “보험료인상으로 인한 내년도 예상수입은 약 28조원 규모이다. 그런데 국고보조는 담배부담금을 포함해 고작 5억 원에 불과하다”며, “20%에 대한 국고보조를 결국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만약 국고보조가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보험료인상률도 2%대로 낮아졌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결국 건강보험에 대한 모든 부담을 가입자에게 떠 넘겼다. 보험료 4.9% 인상은 결국 정부가 국민에게 전가한 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