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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수첩>말 한마디에 의료계 적으로 돌린 경제부총리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속담이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 ‘말’의 역할이 그만큼 매우 중요하다는 것인데 역으로 말하면 세치 혀끝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없던 화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최근 말 한마디로 총 12만 명에 이르는 전국의 의사들을 적으로 돌려 큰 곤혹을 치르고 있는 이가 있으니 그는 다름 아닌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부처를 통솔하는 최고위직 관료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레 최고 엘리트 전문가 집단이라는 의사들의 공분을 그리도 많이 사고 있을까?

현 부총리는 지난 8일, ‘달팽이 뿔 위에서 영토싸움을 벌인다’는 뜻의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한자성어를 의료계에 빗대 인용하면서 “의료업을 포함한 국내 서비스업이 진입규제라는 울타리에 의지해 손바닥만한 국내시장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현오석 부총리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에 반대하는 의료계를 비판하면서 마치 야단이라도 치듯이 현자 입장에서 의료계를 질책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이를 의료인들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경제 관료가 국내 의료환경에 대해 단편적인 인식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당당히 내보임으로써 "역시 정부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료계가 갖고 있는 대정부 인식이 더욱 공고히 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는 이처럼 정부와 정부관료들이 가진 우리나라 보건의료에 대한 안이한 인식에 적잖은 분노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렇찮아도 어색하고 불통 이미지인 의정 관계는 한층 더 냉랭해지고 만 느낌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원격의료는 대한민국의 모든 동네의원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며 “잘못된 의료제도의 문제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의료분야의 문외한인 고위 공직자가 의료계를 폄훼했다”고 밝혔다.

현 부총리는 대한민국 의료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왜 의사들은 외화를 벌어들여오지 않느냐고 비판했지만 규제적 요소가 강한 단일 의료보험체제로 정부가 매년 보험수가계약을 통해 의료비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의료의 수출입은 그의 말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경제관료가 의료계가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좁은 국내시장에서 와각지쟁하고 싸우고 있다며 공익적 특성이 강한 의업에 종사하는 국내 의료인들에 대해 글로벌 마인드가 부재하다고 뜬금없이 비판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장관도, 아니 대통령도 쉽게 하지 못할 말을 평소에 의료계와 별다른 접촉도 없었던 경제부총리가 내뱉은 저의를 알 수 없다.

혹시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정말 그가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포석을 깔아놓는 것일까?

아니면 경제부총리라면 일생동안 의료 외길을 걸어온 의료전문가 집단을 무시하고 즉석에서 자신이 생각한 단편적인 인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부려도 된다는 것일까? 그러면 일생을 의업에 종사한 이들은 뭐가 되는 것인까?

앞서 말했듯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을 수도, 원수를 만들수도 있다고 했다.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말이 불러올 파장을 의식해 책임의식을 갖고 누구보다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경제부총리의 발언의 저의가 어디에 있건, 아니면 혹시라도 그가 대한민국 의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을 폄하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의 질책성 발언은 현 시점에서 부적절했다.

어느 하나 득될 것도 없고 의료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기 힘든 내용이며 의사의 자존심만 건드려놨기 때문에 결국 ‘안 해도 좋을 말’이었다.

꽤나 작정하고 한 말 같은데 의료계 내외를 불문하고 누구 하나 감동 받는 사람이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정부입장에서는 무엇을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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