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4일 종합병원의 외부 회계감사와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사용 세부내역을 정부에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소위 의료기관 회계 투명성 강화법이 발의됐다.
보건의료노조(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최희선)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법·제도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국회와 정부에 요구해왔기에,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조속한 심의와 본회의 처리를 촉구한다.
장기화된 의정갈등 사태는 대학병원의 역대급 경영난을 초래했고, 그 피해는 도리어 헌신적으로 의료현장을 지켰던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은 병원의 비상경영체제에 따른 병동 통·폐합 축소 운영 등으로 무급휴가, 강제 연차 사용, 임금체불을 강요받았다.
출구 없는 위기 상황에 매해 평균 수백억 원 규모의 상급종합병원 고유목적사업준비금에 눈길에 쏠린 것은 당연하다. 2017년부터 2022년 상급종합병원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전입액은 무려 6조 3,178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의 89.9% 수준이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본래의 취지는 비영리법인이 경쟁력 유지를 위한 시설 및 장비 투자와 같은 고유목적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저축해둔 돈이다.
주목할 것은 대형 병원들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쌓아두는 이유다. 대다수 대형 병원들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목적’은 분원 설립으로 향해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산업의 문제로 지적되는 과잉 병상 수(OECD 평균보다 3배)와 수도권 쏠림 현상이 여전한 조건에서 대형 병원들의 분원만을 향한 사업비 전입은 결코 올바른 ‘목적’이 될 수 없다. 인력 중심의 산업 특성상 보건의료산업에서 현재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인력 확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는 병상과 의료 장비는 OECD 평균 이상의 과다 투자 상태인 반면, 보건의료인력은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의 과소 투자 상태다.
무엇보다 깜깜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용처는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재정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병원 사용자 간 첨예한 노사갈등을 야기하는 주요한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병원은 고유목적사업준비금 과잉 적립, 그에 따른 병원 순수익 감소로 발생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약 3년간(2017~2019년) 상급종합병원의 병원당 연평균 당기순이익 중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순입전액 비율이 무려 96.3%에 달하는 상황은 이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결국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규모와 투명하지 않은 운영을 방패삼은 병원의 재정 한계 주장은 노동조합의 정당한 임금인상, 인력충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기 위한 꼼수로 활용돼왔다.
이번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올바른 의료개혁을 위한 필수 과제다. 의료기관의 수익 대부분이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비롯될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목적으로 한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에 대한 미래를 국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국회는 의료기관 회계 투명성 강화법 통과를 통해 올바른 의료개혁에 보다 진취적으로 나서야 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