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회장 안중현, 이사장 유광하)는 최근 보건복지부의 2025년 제1차 국가건강검진위원회에서 내년부터 56세 및 66세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폐기능 검사를 국가건강검진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새로운 검사 항목이 추가된 차원을 넘어, 고령화와 환경 문제로 심화되는 호흡기질환 관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경제 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나라로 꼽히면서 호흡기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령층에서 중증 호흡기질환 유병률이 증가하는 가운데, ‘숨 쉴 권리’는 단순한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공중보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인 만성 호흡기 질환인 만성폐쇄성폐질환 (이하 COPD)은 흡연과 미세먼지 등으로 기도가 좁아져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COPD는 전 세계 사망률 3위의 중증 호흡기 질환이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비전염성 5대 질환으로 지정했다.
국내 40세 이상 유병률은 12.7%로, 약 359만명이 COPD 환자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중 단 4%만이 의료기관에서 진단 및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일반 대중의 질병 인식이 낮은 이유는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거나 단순한 기침, 가래 정도로만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질환으로 인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COPD는 폐 기능이 50%이상 손상되기 전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초기에 진단이 어려운 데다 한번 손상된 폐는 다시 회복되지 않아 제때 관리하지 않으면 폐가 서서히 망가져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지고 끝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호흡 곤란,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이 갑자기 심해져 일상적인 증상의 변화 범위를 넘어서는 ‘급성 악화’가 발생하면 3.3년 내 사망률이 50%에 달한다. 만성적 호흡곤란으로 인해 심혈관계 질환, 폐암 등 다양한 합병증까지 발생하게 돼 이 또한 사망 위험을 높인다. 폐기능검사는 이러한 COPD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급성 악화 및 합병증을 예방하고, 사망률을 유의미하게 감소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폐기능검사의 국가건강검진 도입은 단순 질병의 조기 진단 및 치료를 넘어 국가 전체의 사회경제적 부담 또한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2017)의 추산에 의하면 COPD로 인한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약 1조 4000억원에 달하며, COPD 환자 1인당 사회경제적 비용은 747만원으로 허혈성 심질환(256만원), 당뇨병(137만원), 고혈압(73만원), 고지혈증(32만원) 등 다른 만성 질환 대비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널리 알려진 만성 질환인 고혈압의 10배, 당뇨병의 5배에 달한다.
즉, COPD는 국민 개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도 막대한 부담을 안기는 질환이다. COPD 환자는 질환이 진행될수록 의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데, 폐기능검사를 통한 COPD의 조기 진단 및 적시 치료는 환자 1인당 연간 의료비를 대폭 감소시킬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추가로 천식, 간질성 폐질환 등 기타 호흡기질환의 조기 진단 및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폐활량을 측정하는 ‘폐기능검사’는 COPD 진단을 위한 가장 객관적이고 효율적인 검사 방법으로 짧게는 5분, 길어도 1시간 내에 가능하다. 국가건강검진에서 매년 56세와 66세를 대상으로 폐기능검사를 수행할 경우 연간 약 116억 6770만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 1조원이 넘는 COPD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시 충분히 비용 효과적인 투자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국민 건강 증진 뿐 아니라 보건의료 재정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광하 이사장(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은 “정부의 이번 폐기능검사 국가건강검진 도입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며, “폐기능검사의 국가건강검진 도입은 국민 건강 증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하며, 학회는 폐기능검사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정부 및 유관 단체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 이사장은 “정확한 폐기능검사 검진 수행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과 질 관리 방안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학회는 폐기능검사를 통해 진단된 환자들이 신속하고 적절하게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검진- 치료 연계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은주 대변인 이사(고려대 안암병원 호흡기내과)는 “학회는 보건복지부의 이번 결정을 환영하고 앞으로 유소견자 관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해 만성기도질환 예방과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고령화와 대기 오염으로 인해 앞으로 중증 호흡기 질환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조기 진단 체계를 마련해 어르신의 ‘숨 쉴 권리’를 보장하고 건강한 고령사회 만드는데 학회와 정부가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폐기능검사의 국가건강검진 도입은 단순히 검사 항목이 늘어나는 정책 변화가 아니다. 이는 고령화 사회의 건강 위기, 환경 문제, 의료 재정 악화라는 삼중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사회적 선택이다. 이번 조치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우리 사회는 국민 개개인의 호흡기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 세대가 짊어질 사회경제적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