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종양 관련 의료진들이 의미있는 암 치료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미국에 그 위상을 떨쳤다.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미국임상종양학회(이하 ASCO)에서 국내 연구자들의 구연 및 포스터 등 총 225건의 발표가 진행된 가운데,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원이 제1 저자 및 발표자로 참여한 연구는 6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연구진이 2025년 ASCO에서 알린 주요 연구성과에 대해 소개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국내 대표적인 항암치료 임상연구자 그룹이다. 1998년에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들이 주축이 돼 설립했으며, 다국가·다기관 공동 임상연구를 통해 국내 현실에 맞춰 국민들에게 효과적인 암 치료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ASCO 2025에서 발표된 대한항암요법연구회가 주도한 임상연구는 총 4건으로 유방암, 대장암, 희귀 폐육종양암 등에 대한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이 날 기자간담회에서 ASCO 2025 한국인 연구자의 연구 성과에 대해 소개한 성빈센트병원 종양내과 안호정 교수에 따르면 연세암병원 손주혁 교수와 고대안암병원 박경화 교수는 구연 발표, 국립암센터 차용준 교수와 서울대병원 김범석·김미소 교수는 각각 포스터 발표를 통해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는 2018년부터 진행된 MINI 임상시험을 통해 HER2 양성∙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1차 치료법을 평가 발표했다.
기존 표준치료인 세포독성항암제·트라스트주맙·퍼투주맙의 병용 요법 대신 리보시클립·트라스트주맙·레트로졸을 병용 투여한 결과, 평균 무진행생존기간은 30.4개월로 매우 우수했으며, 전체 환자의 약 61%가 부분 관해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
고대안암병원 종양내과 박경화 교수는 2가지 이상의 HER2 표적 항암제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서 트라스투주맙 바이오시밀러와 게다톨리십 병용 요법을 통해 반응률 43.5%, 중앙 무진행생존기간 5.8개월, 중앙 전체생존기간 18.4개월로 고무적인 효과를 입증한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국립암센터 차용준 교수팀은 CLAUDIA Colon Cancer 연구를 통해, 수술 후 미세잔존암 상태에 따라 보조항암치료 강도를 조절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미세잔존암 양성 환자에게는 강화요법을, 음성 환자에게는 저강도 치료 경과 관찰을 진행하며 정밀의료 가능성을 확인하는 의미있는 임상으로 주목받았다.
서울대병원 김범석·김미소 교수팀이 소개한 KCSG LU-19-24 2상 임상에서는 희귀 폐육종양암 환자 대상 면역항암제 더발루맙과 항암화학요법제 독소루비신 및 이포스파미드의 병용요법이 평가됐다. 객관적 반응률 35%, 전체생존기간 9.4개월로, 국내 최초로 희귀 폐육종양암에 대한 면역항암제 기반 치료 가능성을 입증한 의미 있는 연구로 평가받았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성배 교수는 유방암 환자에서 경구용 파클리탁셀 치료에 관한 다국가 OPTIMAL 3상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경구용 파클리탁셀은 주 1회 정맥주사 파클리탁셀과 비교해 무진행생존기간이 10.02개월로 정맥주사 8.54개월보다 우월했다. 또 객관적 반응률도 각각 45.8%, 39.7%로 더 높게 나타났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는 기존 세포독성항암제(FOLFOX 또는 CAPOX)에 펨브롤리주맙과 렌바티닙을 병용했을 때 효과를 비교한 3상 임상시험 LEAP-015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1차평가변수인 무진행생존율과 2차평가변수인 객관적반응률은 대조군 대비 향상되게 나타났으나, 또다른 1차평가변수였던 전체생존율은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안호정 교수는 “과거에는 ASCO에서 한국인 연구자가 플레너리 세션 등에서 주도적으로 발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큰 홀에서 주 연구자로 직접 발표하는 경우가 흔하게 보여지고 있다”며 “한국 연구자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는 점이 매년 실감된다”고 밝혔다.
특히 “산업계에서도 한국의 임상연구 시스템을 신뢰하고 있고 연구도 활발히 이루지고 있다. 주 연구자가 한국인인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한국 연구자들은 국제 학회 등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ASCO 2025 내용을 바탕으로 ctDNA, ADC, BiTE, CAR-T 등 향후 주목해볼만한 치료기술에 대해서도 소개됐다.
특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인근 교수는 ctDNA 기반 정밀의학과 정밀 타격형 면역·항체 항암치료의 임상현장 진입 가속화에 대해 언급했다.
ctDNA는 종양에서 유래된 DNA 조각이자 혈액만으로 암 유전 정보를 분석할 수 있어 조직 확보가 어려운 환자에게 대안이 되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반 분자진단 기술이다. 박 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이번 학회를 통해 ctDNA는 단순히 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를 넘어, 치료전략을 결정하는 핵심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수술 후 ctDNA로 미세잔존암을 확인해 보조항암치료의 필요성과 강도를 조절한 최초의 무작위 임상시험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기조 강연에서 발표된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ctDNA를 활용해 기존 영상 검사보다 빠르게 치료 반응을 파악하고, 조기에 약물 치료를 조정함으로써 무진행생존기간의 유의한 개선을 보여줬다.
박 교수는 “ctDNA를 통해 영상 기반 평가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약물 반응을 예측할 수 있어, 치료 전략을 보다 정밀하게 조정하게 해준다. 이로써 임상 의사결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에는 신약이 표준치료로 자리 잡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최근에는 2~3년 내 진료지침에 반영될 만큼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이번 ASCO에서도 혁신 신약들이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임상에 적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안진석 회장은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원들이 참여한 다양한 암 연구가 세계적 학술 무대에서 발표되며, 한국의 임상연구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며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앞으로도 환자들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구 기반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