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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치료 불만이 의료진 폭행으로…너무도 저급한 응급실 이용 문화

"응급실 폭행 근절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법부 판단 때문"

"응급실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사법부의 인식과 판단이 바뀌어야 한다."

17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안전한 의료 환경을 위한 의료인 폭행방지 긴급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전선룡 법제이사가 이 같이 말했다.

2015년 2월 서울 용산구 소재 종합병원에서 당직의사 최 씨(26)가 목을 다친 주취자 김 씨(49)에게 목 보호대를 감으려 하자 괴성을 지르며 최 씨 배를 발로 걷어찼다. 이를 다른 응급실 의사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도 주먹을 휘둘렀다. 출동한 경찰관에게도 난동을 부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김 씨는 이전에도 응급실 난동 전과가 있었으나 법원은 폭력 정도가 심하지 않고, 술을 끊겠다며 반성한다는 이유로 벌금 5백만 원을 선고했다.

2014년 12월 서울 강남구 소재 대형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전 씨(36)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뇌진탕 증세를 호소했다. 방사선사가 엑스레이(X-ray) 촬영을 위해 전 씨에게 가만히 있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몸을 계속해서 움직이자 의사가 몸을 고정하기 위해 양다리를 잡았다. 이에 전 씨는 오른쪽 다리로 의사의 어깨를 누르고, 손으로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 안경이 벗겨지게 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재판부는 전씨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하여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2016년 10월 울산 남구 소재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유 씨(64)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고 판단하여 돌아가라고 한 당직의사에게 "네가 의사냐. 진료거부로 신고하겠다."며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했고, 이로 인해 응급실 업무가 30분 정도 마비됐다.

이 사안에 대해 재판부는 죄질이 좋지 않지만 유 씨가 자백하고 나름대로 반성하는 점을 고려해 징역 8개월 · 집행유예 2년 ·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전 법제이사는 "종합병원 응급실이 30분간 마비될 정도면, 해당 응급실에서 진료받는 환자의 생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만일 판사가 해당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는 도중 폭력 사건이 발생하여 30분간 응급실이 난리 났다면,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할지 의문이다. 판사들은 이러한 경우를 안 당해봤기 때문에 이 같은 판결을 내린 거다."라고 말했다.

2014년 서울 강남구 소재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최 씨(41)는 "내 딸이 여기 있느냐"고 고함을 지르며 입원한 딸을 찾았다. 당직의사 · 간호사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최 씨는 응급실 컴퓨터 모니터를 때려 부수고, 의료진에게 10분간 욕설을 퍼부으며 난동을 부렸다. 

최 씨는 이전에도 공무집행방해 전과가 있었으나 재판부는 최 씨가 다급한 마음에 자녀를 찾다가 범행에 이르렀고, 가족도 부양해야 한다면서 징역 9개월 ·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 법제이사는 "응급실이 무슨 경찰서 · 동사무소인가?"라고 반문하고, "가족을 찾는다는 이유로 고함을 지르며 컴퓨터 모니터를 때려 부쉈는데 법원은 온정적인 판결을 내렸다. 법원 실태가 이렇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 법제이사는 "응급실 폭행 근절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법부의 판단 때문"이라면서, "응급실 환자들은 1분 1초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응급실에서 공공의 위해가 발생해도 사법부는 응급실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구분 · 판단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양형 기준 개선 없이는 문제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사법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는 대한의사협회 전선룡 법제이사를 포함하여 △대한병원협회 박진식 정책부위원장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 △법무법인 고도 이용환 변호사 △보건복지부 박재찬 응급의료과장이 참석했다.

대한병원협회 박진식 정책부위원장은 ▲응급실 폭행에 무관용 원칙 적용 ▲상시 안전체계 구축 ▲특정범죄가중법(이하 특가법)에 의료인 · 환자 포함 등을 제언했다.

박 부위원장은 "진료현장에서 발생하는 폭행 · 협박은 의료법 제12조(의료기술 등에 대한 보호)에 따른 진료 방해로 엄격히 해석하여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즉각 구속 등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면서, "응급실 폭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주취 감경이다. 의료기관 내 폭행 · 진료방해에 한해서라도 주취 감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했다.

반의사불벌죄를 삭제하고,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으로 처벌하여 보복 범죄의 불안을 덜어야 한다고 했다. 

박 부위원장은 "관할 경찰서는 의료기관과 비상연락 · 신속한 출동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폭력이 행사되는 시점에 경찰이 응급실에 도착하기 어려우므로 응급환자 이용이 많은 야간 및 사건다발생 시간대 중심으로 ▲경찰 1인 의무 배치 ▲순찰 집중 강화가 필요하다."면서, "응급의료법 제21조(기금의 사용)에서 응급의료기금 사용 용도를 규정하는데, 응급의료기금 사업 목표는 모든 응급환자에게 적정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응급실 내 청원경찰 · 경비원 등 안전 인력 채용, 안전시설 설치 등으로 응급의료기금을 사용할 수 있게 용도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특가법에 보건의료인 · 환자 폭행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박 부위원장은 "특가법에서는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를 폭행 · 협박한 사람을 5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 벌금을 물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의료행위 중인 의료인과 환자에 대한 폭행도 가중처벌 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면서, "특가법 제5조의9(보복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따라 보복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엄중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박 부위원장은 "의료기관은 환자 생명을 다루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번을 계기로 정부는 주취자 관리 · 보호에 책임을 다하고, 국회는 의료기관의 환자 진료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응급실 진료 환경 개선 ▲주취자 관리 매뉴얼 강화 ▲처벌 실효성 강화 ▲환자 · 의료인 교육 및 홍보 등을 강조했다.

윤 총장은 "응급실은 환자 · 보호자가 많아 내부가 복잡하고, 대기시간이 길다. 중증도 분류 체계도 불분명하고, 의료인 부족으로 환자 · 보호자 불만이 발생하여 결국 폭행 · 폭언으로 이어진다."면서, "진료 환경 개선 없이 폭행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방안이 아니다. 환자 · 의료인 권리 보호 차원의 폭력대응 및 대비 매뉴얼을 수립 · 운영하고, 이에 따른 시설 · 장비 · 인력 · 업무체계를 갖출 수 있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했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주취자 기준을 마련하여 이들을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윤 총장은 "미국에서는 위험 요인이 있는 환자를 분리하는 격리 침상을 마련하여 관리한다. 주취자를 차별하고, 진료권을 제한하는 게 아니다. 주취자 · 응급실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들을 치료할 경찰 상주의 별도 주취자 응급관리 시설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을 만드는 것에는 시간이 소요되므로 일단은 △응급실 내 주취자를 포함한 응급 환자 관리 매뉴얼 △의료기관 내 폭행 대응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매뉴얼을 지킬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핫라인 가동, CCTV 설치, 의료기관 내 문화 조성, 경비 권한 강화 등을 언급했다.

윤 총장은 "응급실 사각지대가 없도록 병원장이 나서서 CCTV 설치를 해야 한다. 또한, 병원장이 형사고소를 제기해 엄정한 수사 · 재판이 이뤄지도록 의료기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의료인은 피해자임에도 합의를 종용받고 가해자 협박에 혼자 대처한다. 모든 것을 의료인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기관, 의료인, 경찰,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모두가 이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해결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경찰은 응급실 신고를 타 신고에 우선해야 한다. 병원 내 폭행 사건을 관리 · 담당할 경비 및 안전관리담당자를 정해 이들을 경찰 · 국가에서 교육하고, 매뉴얼 하에서 일정 부분 권한을 주도록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 · 홍보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응급실 환경은 너무 복잡하고, 뭐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이 어렵다. 이에 환자는 답답한 마음과 불만을 가진다. 환자가 어떤 경우에 응급실을 이용해야 하며, 응급실 내에서는 어떻게 환자를 분류해 치료하는지 사전에 잘 설명해야 한다. 환자가 이를 이해하게 되면 불만이 조금이나마 줄어들며, 환자 · 의료진의 이해 및 소통이 원활해지면 응급실 폭행 · 폭언 문제도 일정 부분 개선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고도 이용환 변호사는 "대개 당사자 또는 가족이 응급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료인 폭행이 발생한다."면서, "현재 긴급구호 필요성이 있는 주취자는 정신병원으로 이송하지 못한다. 아울러 술에 취한 정신질환자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경우 △정신의학적 조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매뉴얼 미비, 가족 반대, 당사자 반대 등으로 정신병원 입원이 어려워 결국 응급실로 이송된다. 주취자는 정상적 인지 상태가 아니어서 진료 시 폭행이 유발될 수 있다."라고 했다.

의료인에 대한 폭행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인에게 가해지는 폭행으로, 국민 건강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면서, "의료행위 중인 의료인 ·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의료를 방해한 경우 외에는 일반 형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제 적용은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 의료인 △응급의료를 하지 않는 의료인 대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의료인의 의료행위는 언제든지 필요할 때 이뤄져야 한다는 점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의료를 필요로 하는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법익에 해당하므로, 가중처벌 및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판단했다.

보건복지부 박재찬 응급의료과장은 "어떤 경우 · 이유에서든 폭력은 불가하다. 특히 응급실의 경우 불가하다."면서, "환자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료 현장에서 치료에 전념하는 의료진을 폭행하는 일이 반드시 허용돼서는 안 된다. 이제는 모두가 생각 · 지혜를 모아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박 과장은 "그간 응급실에서 수많은 폭행이 이뤄져 왔지만, 제대로 된 대책은 없었다. 현재 정부가 경찰청과 다양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의료기관 폭행은 법 · 제도상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에 의료인이 안전한 진료환경에서 어떻게 진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다각도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복지부에서도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만들어진 방안에 대해서는 의료계 · 전문가와 의논하여 고쳐나갈 예정이다."라고 했다.

과거에는 버스 운전자가 수시로 폭행을 당하는 위험한 상황이 많이 발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버스 운전자를 폭행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박 과장은 버스 운전자 폭행과 마찬가지로 응급실 폭행도 특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박 과장은 "응급실에서는 중증도에 따라 진료 순서가 분류된다. 경증 환자의 경우 지시에 따라 대기해 진료받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는 국민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응급실 이용 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응급실을 방문하는 어린 환자의 경우 경증이 많다. 그런데 응급실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가 많아 자녀가 진료 순서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 부모가 화를 낸다. 이 경우 의료진은 급박한 응급실 환경 속에서 답변을 제대로 못 해주게 되어 욕설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물론 주취자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서 응급실 이용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오래 기다리는 이유를 환자 · 보호자가 충분히 이해하면 의료인에 대한 불만도 사라질 것"이라면서, "환자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의료기관에서는 수많은 환자를 돌보려 하므로, 환자는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요청 못 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응급의학회가 응급 현장에서의 환자 대응 지침을 만든 것으로 아는데, 이참에 지침을 개정해 환자를 대할 때의 기본자세, 주취자 대응법 등으로 해결해나갔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응급실에서 의료인이 폭행을 당해도 개인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쉬어야 할 시간에 진술서를 쓰고 조사받으면 대다수 의료인은 포기를 생각한다. 병원은 원내 법무전담팀을 마련해 폭행 사건 발생 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지원해야 한다. 물론 이 문제들은 한 번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합쳐지면 어느 순간 우리나라 응급실 문화도 선진국만큼 좋게 바뀌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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