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 등 중증 심장질환이 현행 법체계에서 소외돼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법적 명시 및 재원 확대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과 대한심장학회가 심장질환의 보장성 강화와 인프라 확충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19일 공동개최했다.
붕어 없는 붕어빵, 심장병 없는 심뇌법
이번 토론회에서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대한심부전학회 정책이사)는 ▲법률상 대상질환 확대 및 명시 ▲복지부-질병청 역할혼선 해소 ▲지자체의 참여 위한 예산 기반 마련을 촉구했다.
2020년 이후 질병관리청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심뇌혈관질환법 집행 주체는 ‘복지부’에서 ’복지부+질병청’ 체계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제2조의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화는 질환’에 대한 내용이 삭제되면서, 심부전이나 부정맥 등 중요한 심장질환이 법 체계에서 누락됐다는 점이다. ‘허혈성 심질환을 포함한다’는 포괄규정이 있었지만 실제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제외됐다.
이해영 교수는 제2차 심뇌혈관질환 종합계획 115개 과제의 대부분이 심근경색, 뇌졸중 중심이고 심부전이나 부정맥 등은 후유증 관리 항목으로 포함돼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심근경색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OECD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이 교수는 핵심 원인을 심근경색에서 심부전으로 이어지는 종합적인 관리 실패라고 진단했다. 실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의 심부전 환자 비율은 40%에 달하고, 순환기내과 입원환자 3분의 1이 심부전이다. 심근경색증을 경험한 환자가 심부전으로 넘어가게 되면 사망률도 2배나 증가한다.
연구는 복지부가, 조사와 통계는 질병청이 맡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연구와 통계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확한 통계를 위해서는 복지부와 질병청 모두 연구 및 수집 권한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개인정보보호법 예외가 연구사업에는 적용이 어려워 실제 사망∙환자 데이터가 누락되고, 동의기반 자료만 남을 경우 사망률 등 통계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 역할 및 심뇌혈관 예산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됐다. 이 교수는 “심전도 촬영 등 119 구급대 활용은 지자체의 권한으로, 효과적으로 심뇌혈관법을 관리하려면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지자체의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하는 근거 조항이 법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적 미비한 국내 심장질환 관리 , 입법으로 앞서나가는 해외
길병원 심장내과 정욱진 교수(대한심장학회 정책이사)는 ▲법적정의 체계 정비 ▲심장질환 보장성 제도 확대 ▲중증도 기반 의료인프라 구축 ▲심장질환 중환자실 인프라 마련 ▲건강증진기금의 합리적 배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해소됨으로써 국민 건강권 보호는 물론 지역 의료격차 해소, 합리적인 재정 집행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중증심장질환은 법도, 보장성도,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다.
정 교수는 “심장질환 사망률이 국내 2위임에도, 환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 부담률이 60%에 달한다”며, 암이나 만성 콩팥병 등 다른 중증질환과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현행법에는 심장 질환에 대한 산정특례가 없어 환자들이 충분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에서는 ‘급성 심근경색증 및 기타 심장질환’으로 분류돼, 실질적으로는 심근경색증 외에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프라 역시 전국 응급센터는 200여개가 있는 반면, 권역·지역 심뇌혈관센터는 20여개에 불과하다.
법적 기반의 부재는 ‘심장 중환자실’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정 교수는 “심장 중환자실은 환자를 제일 많이 살릴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ECMO 등 기구도 많이 필요하지만 지원이 하나도 없고, 병원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해외 정책 흐름과의 격차도 크다. 정 교수는 “(중증 심장질환 법적 관리가) 지금까지 너무 소홀했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도 국제적 기준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외국 사례를 살펴보면 구체적인 법적 명시를 바탕으로 ‘Milloin Hearts Initiative’(미국), ‘cardiovascular Health Mission’(호주), ‘순환기병 대책 추진 기본계획’(일본)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심뇌혈관법이 존재하지만 급성기 심근경색증 위주이고 나머지 심장질환은 아예 반영되지 않은 수준이다. 정 교수는 “국가-지방계획과 의료인프라가 연계된 다중 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체계적인 예산∙전주기적 질환 관리를 촉구했다.
경북대학교병원 양동헌 병원장 역시 질환의 정의와 재원조달 문제에 대해 해결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 지정체계 보완 ▲사업비∙보상체계 개선 필요성도 제기했다.
양 병원장은 “현재 심뇌혈관법에는 중앙∙권역∙지역 심뇌혈관질환센터가 지정돼있지만 진료체계 구축이나 역할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면서 “중진료권별 다양한 역할과 상황을 고려해서 어떻게 기관을 설정하고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행법상 급여나 수가도 뇌혈관질환에만 적용되고 심혈관질환은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떠올랐다. 양 병원장은 “심혈관질환 환자들의 입원이나 관리, 예방, 재활, 사후관리 등에 대한 관리료가 부재하다”면서 “중환자실도 역할에 따라 보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좋은삼선병원 심혈관중재시술연구소 배장환 소장은 먼저 “심부전 전문의를 양성할 수 있는 법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학회에서도 최소 6개월 이상 중증 심부전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가의 적극적인 연구 참여 필요성도 강조했다. 예컨대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얼마나 낮춰야 심부전을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제안해도 국가는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배 소장은 “이제는 만성질환 관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사업을 제약회사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한다”며 “지원체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지역 심뇌혈관질환센터에 대한 지원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권역센터와 달리 지역 심뇌혈관센터는 현실적으로 지원금이 없는 상황이다. 배 소장은 “최소 1년에 600억원 이상의 심혈관질환 관리 기금을 조성해 24시간 전문의 체계 및 심부전 대응이 가능한 중증 권역센터·심혈관센터를 확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립보건연구원 만성질환융복합연구부 김원호 부장은 기관 간 역할의 명확성이 드러나야한다며 복지부는 정책∙현장 중심, 질병청은 조사·통계·국가 통합 데이터·진료 지침 제공 등을 수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부장은 “총괄은 복지부가 하더라도 질병청이나 국립보건연구원의 역할을 명확히 부여해 각 기관에서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장재원 과장은 “국가 차원에서 개별질환마다 법, 센터, 기금을 만들어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면서도 “심장이 멈추면 생명이 위태로운 만큼 심장질환 환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이어 “지역 심뇌혈관센터 등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이제 막 지원을 시작한 단계”라며 “지원을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김윤 의원은 “심장질환 환자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 범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진단과 치료뿐 아니라 재화로가 예방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 심장질환을 법률에 명확히 정의하고 심혈관센터의 확충, 지역간 의료격차 완화 등 환자들이 어디서나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회를 향해서는 “예산을 잘 써야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2027년 예산집행을 앞두고, 2026년 하반기부터 복지부나 지자체에게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제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