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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故 임 교수 추모식, '임세원법' 제정에 모두 힘 모으기로

정신질환자가 차별 없이 쉽게 치료받는 사회 만들기에 뜻 모아

정신질환 분야 최전선에서 평생을 환자 치료에 헌신한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故 임세원 교수를 애도 ·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의학회)가 12일 오후 4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유광사홀에서 의학회 회원 · 유가족 · 직장 동료 · 고대의대 동문 등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故 임세원 회원 추모식'을 거행했다. 

故 임 교수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이 날 추모식은 △故 임 교수 약력 보고 △추모사 · 추모 영상 및 추모곡 △유가족 인사 △의학회의 다짐 · 결의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의학회 권준수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12월의 마지막 날, 환자에 의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임세원 교수의 비보는 아직도 온전한 현실로 믿어지지 않는다. 그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환자가 위협을 하자 임 교수는 급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주변 사람에게 사태를 알리며 피신했는지를 살폈다."고 당시 상황을 언급했다. 

권 이사장은 "오늘 자리는 故 임 교수를 우리 마음에 한 번 더 깊게 새기는 날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임세원이라는 이름은 차별 없고 안전한 진료의 상징으로 우리 마음속에 새겨질 것이다. 오늘 이 자리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유가족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여기 모인 정신 건강 관계자에게는 굳은 의지를, 환자에게는 차별 없는 세상을 조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단체가 자주 만나 연대하여 정신보건 분야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후 故 임 교수의 제자 · 친구 · 동료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임 교수의 제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영 임상강사는 "나는 교수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학원 학생이 됐다. 내게 교수님은 나침판과 같은 사람이었다. 환자 고통에 무뎌져서 내가 해야 할 소임을 하지 못하면 교수님은 마음이 아픈 게 어떤 것인지 환자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도전을 줬다. 반대로 환자의 고통에 과민해져 내 자신을 무력화하는 치료자로 낙인찍을 때 내 존재를 다시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입을 열었다. 

김 임상강사는 "나를 비롯한 제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방향을 제시한 은사를 한순간에 잃었으나 교수님의 정신이 제자를 통해 흘러가서 마음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될 것 같다. 교수님은 '결코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교수님을 잃은 절망의 시기에 끊임없이 나를 일으키는 건 교수님의 정신 · 조언이다."라면서, "우리 제자들은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이 힘든 환자를 위해 끝까지 연구할 것이며,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겠다."고 말했다.

임 교수와 고대 의대 동문인 백종우 정신보건이사는 "2일 아침에 너의 여동생이 가족을 대표해 전화를 줬다. 안전한 치료 환경을 조성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 · 차별 없이 쉽게 치료 ·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고인의 유지라고 했다."며, "지난 29년간 숱한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나는 항상 너에게 먼저 연락했어. 내 말을 다 들어주고 내가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객관화 · 명료화를 해줬어."라고 떨리는 목소리를 이어갔다.

백 이사는 "친구야. 나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많은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법 · 제도를 통해 좋은 치료 환경이 되도록 포괄적 지원을 만들고 그 앞에 네 이름을 새겨 넣을게."라면서, "2012년에 '보고 듣고 말하기'라는 제목의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틀을 제작하여 그림으로 보여주던 그 날의 너를 잊지 못해. 너는 2019년에 개정판을 만들게 됐다며 신이 났었다. 그 전하지 못한 진심은 내가 대신 전할게. 너는 '우리 함께 살아보자'라고 말했지? 체온으로 위로하고 손잡고 지켜주는 사회를 만들 때까지 함께 행동할게."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임 교수의 선배이자 동료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영철 교수는 "나는 한 번도 당신이 자신을 앞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이익 · 안위 · 위치 · 목표를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당신을 좋아했던 것은 당신의 뛰어난 능력이나 병원 · 연구소 · 학회에서 보여준 대단한 업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당신이 보여준 진정성 때문이었다."며, "12년간 함께 정신과 동료로 일했고, 지난 6년 간은 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의 부소장으로 함께 했다.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는 잘 안다. 당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게도 큰 행복이었다. 아무런 외적인 보상도 주어지지 않은 그 일에 당신은 모든 열정을 쏟았다."고 임 교수를 기억했다. 

신 교수는 "당신의 빈 자리가 그립다. 두렵지만 다시 일어나 당신이 못다 이룬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같은 상황이 와도 당신은 그렇게 할 것을 잘 안다. 당신을 기억하되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잘 자고 많이 웃겠다. 그게 진정 당신이 원하는 일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당신을 먼저 떠나보냈음을, 당신을 지켜주지 못했음을 미안해하지 않을 거다. 그저 당신과 함께했음을 행복해하고 고마워하겠다. 당신이 나의 동료여서 당신이 나와 같은 정신과 의사여서 당신이 함께 해줘서 참으로 고맙고 행복했다."고 애도했다.

이날 유가족 인사는 신영철 교수가 대독했다. 

유가족은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문다. 아직도 이 상황이 꿈이기를 바란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환자가 '남편 덕분에 잘 치유가 돼 지내고 있다'며 내 손을 잡고 울었다.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남편이 항상 환자 아픔에 같이 아파한 일이 생각난다. 평소 알 수 없는 통증으로 힘들어했던 남편이 이렇게 아프게 간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라고 했다.

이어 "남편의 아픈 죽음이 꼭 임세원법으로 열매를 맺어 헛되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은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다. 정신질환 환자가 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남편이 계속 기억 · 추모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족도 함께하겠다."라고 했다. 

의학회 박용천 차기 이사장은 "우리 의학회에서는 '임세원 교수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는 추모위원회이자 임세원 정신 계승 위원회가 될 것이다. 의학회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임세원 재단을 설립 · 유지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흉상 제작, 임세원 인권상 · 임세원 학술상 제정, 추모집 발간, 1주년 추모 행사 개최 등이 있다. 추모 행사는 12월 31일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하길 원한다. 법 제정을 통해 고인의 정신을 유지하고, 각종 학술대회 때 임세원 교수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진행하여 영원히 살아 있는 임세원 교수를 기리고자 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박 차기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단독으로는 임세원법 제정 ·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임세원법 제정은 보건복지부 이외에 법무부를 비롯한 각종 부처 지원이 필요한 사안이다. 임세원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신보건 관련 단체부터 힘을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의학회와 정신보건유관단체는 공동으로 결의문을 낭독했다. 결의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평생 마음이 아픈 사람과 함께 하고자 했던 동료 故 임세원 교수를 애도한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에 빈약한 정신건강시스템과 지원의 부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고인의 유족이 우리에게 보여준 고인의 유지를 함께 실현해나가고자 한다.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신체 질환과 다름없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고, 편견 없이 언제든 손쉽게 치료 · 회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는 제도적 ·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첫째, 모두가 안전한 진료환경을 소망한다. 정부는 구체적 안전대책을 마련하라.

둘째,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 

셋째, 국회 · 정부 · 사회는 근본적 정신건강개혁을 수행해나갈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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