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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의료교육 현장은 이미 임계점…“아이들, 의대라는 틀에 가두지 말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학부모 여러분!

우리는 평생을 대학병원에서 환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의사이자 교수입니다. 평생 일궈온 의료 환경이 무너지는 아픔도 크지만, 그보다 더 참담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인 인재들이 거대한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의대 쏠림’이라는 집단적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유치원생부터 의대 입학을 준비하는 이 비정상적인 풍경은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자해 행위입니다. 

1. 정부의 통계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부는 의사가 부족하다며 화려한 수치를 제시하지만, 그 통계에는 다가올 ‘공급의 혁명’이 빠져 있습니다. AI와 로보틱스 기술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되면 교통사고 외상 수요는 급감할 것이며, 지능형 로봇은 의료 현장의 노동을 획기적으로 분담할 것입니다. 지금 늘려놓은 의대생들이 현장에 나올 10년 뒤, 그들은 이미 기술에 자리를 내어준 ‘유휴 인력’이 될 위험이 큽니다. 

2. 대한민국을 살리는 힘은 연구실과 사유에서 나옵니다. 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계를 제패한 우리 제조업의 과학 인재들과 고난 속에서도 길을 찾았던 철학적 사유의 힘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가야 할 곳은 좁은 진료실이 아닙니다. 

세계 시장을 호령할 미래 모빌리티 연구소, 인류의 삶을 바꿀 로봇 과학 현장,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를 성찰하는 인문학의 바다로 똑똑한 인재들이 몰려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은 인구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존립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3. 부모님들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아이들에게 의대라는 ‘안전해 보이는 감옥’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지난 정부가 선전했던 ‘의사 고소득의 환상’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대신 우리 아이들이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서 꿈을 꾸고,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가치를 향유하는 철학적 인간으로 자라게 도와주십시오.

4.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정치는 눈앞의 선거를 보지만, 교육과 의료는 백 년 뒤를 보아야 합니다. 

현재 전국 의과대학은 24, 25학번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유례없는 ‘더블링’ 사태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대학은 평년의 두 세배, 일부 대학은 평년의 4배 이상의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고, 이들이 본과에 진입하는 2027년부터는 해부학 실습조차 불가능한 ‘교육불능’ 상태가 초래될 것입니다. 이 학생들이 본과 3학년에 진입하는 2029학년도에는 ’환자를 직접 보지 못한 채 참관 위주의 실습만이 가능‘하게 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충분한 병상과 교육 인프라 없이 급조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결국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비극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근시안적인 2027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결정은 우리 국가의 인적 자원을 한곳에 몰아넣고 고사시키는 비극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인재의 블랙홀이 될 의대 증원, 국가의 미래는 누가 설계합니까? 

지난 정부의 폭력적인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뒤이어 이번 정부에서는 ‘공공의대 신설과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이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증원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구 소멸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해, 국가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비효율적인 구조 속에 가두는 중복 과잉 투자일 뿐입니다. 

우리 교수들은 연구실에서 질병의 근원을 찾고 인류의 생명을 연장할 기술을 개발할 때 가장 행복한 학자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의대 광풍은 우리로 하여금 연구실 문을 나서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가 만든 근시안적 통계는 수많은 인재를 입시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유치원부터 의대를 꿈꾸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과학자가 기술을 개발하고, 철학자가 가치를 사유하며,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인적 자원의 선순환이 무너질 때 대한민국은 소멸의 길로 접어들 것입니다. 이에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대한민국 의료와 교육의 백년대계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국민과 정부 앞에 엄중히 제언을 드립니다. 

임계점에 다다른 의료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7학년도 의대입학 정원 확정 계획을 멈추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과학적 인력 수급 모델’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 주십시오. 

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호소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의대라는 좁은 틀에 가두지 마십시오. 대한민국이 다시 기술 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똑똑한 인재들이 연구소와 과학 현장으로 기꺼이 나아갈 수 있는 토양을 먼저 만들어 주십시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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