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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현장과 환자는 지금, ‘적정 의료인력 제도화’가 필요하다

보건의료노조, ‘의료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과 의료질에 미치는 영향 증언대회’ 개최
“TV에서 보는 ‘전인간호’는 현장에 없어… 적정 의료인력 제도화 시급하다”

‘올해는 꼭 인력확충’이라는 슬로건 아래, 현장 의료진들이 적정 의료인력 제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나순자)는 7월 2일, 보건의료노조 지하 생명홀에서 ‘의료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과 의료질에 미치는 영향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인력이 부족한 현실이 부실의료서비스 발생이라는 악순환으로 반복되고 있다. 의료인력을 국가가 양성하고 배치, 지원하는 ‘보건의료인력 국가책임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은 현장의 의료인력 부족이 미치는 영향을 증언하기 위해 현장에서 근무하는 신입 간호사, 20년 경력 간호사, 그리고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사직 간호사, 현업 물리치료사까지 총 4명의 현장 증언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환자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전인간호, 적정인력 제도화 없이는 불가능”


수도권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는 신규간호사 A씨는 “혼자로는 버거운 업무를 매일 감당하는 의료소모품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신규간호사가 숙련될 때까지 일을 분담할 충분한 인력 없이 1달의 교육 후에 바로 업무에 배치돼 적게는 8명, 많게는 13명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의료인력의 부족은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다. 1명의 간호사가 12명의 환자를 보며 가벼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겐 기다리라 말하고, 불안해하는 환자를 정서적으로 지지해주지 못한다. 현장에 멈춰서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기다리라며 뒤돌아서는 환자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지방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20년차 간호사 B씨는 “밥을 먹지 않고 근무 시간 앞뒤로 더 일을 해도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 위급 환자를 처리하느라 가래 제거가 후순위로 밀렸는데, 이로 인해 폐렴이 발생해 중환자실에 옮겨진 환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B씨는 “근무조당 환자를 5명만 보게 되거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 전면확대된다면 죄책감을 갖고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신종 감염병이나 대량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지지만, 규정을 지킬 인력의 배치가 가장 먼저 확보돼야 한다. 근무조당, 간호사 1명당 담당할 환자를 법으로 정하는 것이 국가가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 의무다”라고 했다. 

B씨는 “저는 한국의 잘못된 의료제도와 병원정책으로 인해 적절한 인력을 배치받지 못한 피해자임과 동시에, 모든 환자에게 적절한 간호를 제공하지 못한 가해자”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수도권 대학병원 사직 7년차 간호사 C씨의 증언도 비슷했다. C씨는 “간호사가 환자를 10명 이상 보는 조건에서 바쁜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처방대로, 그 수준까지만 설명하고 빠르게 가버린다. 1명의 간호사가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므로 환자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C씨는 환자에게 재원 일수 제한 때문에 퇴원을 강권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다른 응급환자를 처리하느라 자리를 비워야했고, 몸이 2~3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C씨는 하소연할 곳 없는 이런 상황들이 반복돼 7년만에 병원을 그만뒀다.

C씨는 “1명의 간호사가 10명의 환자를 보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잦은 이직으로 인해 숙련 간호사가 부족하고, 신규 간호사가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바쁜 현장에서 확인이 잘 이뤄지지 못해 투약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환자 이동을 돕지 못해 낙상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C씨는 “간호사의 높은 사직율은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환자 중심이라고 말로만 외치기보다 현장 간호인력을 늘려서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1:5로 낮추는 것이 바로 환자 중심, 환자 안전, 환자 존중, 환자 권리다”라고 강조했다.

물리치료사 D씨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상급종합병원과 민간재활병원을 거쳐 현재는 공공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D씨는 “충분한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거나 적정한 인력기준 없이 행해지는 치료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환자이다. 현장의 물리치료실과 대부분의 재활병원들은 장비 확충에만 경쟁적으로 몰두하는 상황이다. 적정한 인력기준을 마련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 촉구하는 전문가 의견 이어져


이날 현장증언 이후에는 적십자간호대학 장숙랑 학장,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의 전문가 의견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전문가 의견보다도 현장의 증언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장숙랑 교수는 “한국은 간호인력 기준이 의료법에 한 줄, 시행령에 서너줄로 명시돼 있다. 의료법 위반은 시정명령과 불응시 업무정지 15일로, 의료기관에 압박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이것이 오늘 증언대회를 연 이유”라고 말했다.

장숙랑 교수는 “미국의 간호인력 배치기준을 보면, 비디오 모니터로 간호인력을 확보했다고 명시하지 말고, 환자 수 평균으로 계산하지 말라는 제한사항들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단계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현실은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기술을 갖춘 충분한 보건의료 종사자를 보유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과 의료돌봄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동안 간호 인력 배치에 대한 논의만 주를 이뤘는데, 서로간의 협업과 연관성을 고려해 환자의 사망과 안전에 각 직종의 인력배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오늘 증언대회는 사실 환자가 이야기할 내용이지만, 말할 수 없는 환자 대신 목소리를 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암제와 신의료기술 신속 도입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인력을 투입하는 것만큼 안전성과 효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인색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기종 대표는 “2016년 영국환자협회는 정부가 간호사 대 환자 1:6 비율을 지키지 않아 전국에서 감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도 늦었는지 모르지만 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로 나간 간호인력을 귀환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환자 안전을 확충하기 위한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위해 의료보건 20개 직종 중 정부에서 6월 말까지 6개 직종에 대한 인력기준을 만들기로 했지만,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의료법 36조(준수사항), 87조(벌칙)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인력기준 마련과 동시에 직종간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발표한 복지부의 ‘간호사 처우개선은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슬로건처럼 국가책임과 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여기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를 언급하기도 했다. 보장성이 높아도 보건의료인력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코로나19 이후 호주에서는 간호사들이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에서 1:4로의 전환을 촉구하며 파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적정한 의료인력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최소한의 의료질을 확보하기 위한 적정 의료인력 제도화가 필요해 보인다.

적정의료인력 기준 마련은 해외로 이동하는 간호사의 유인책이 될 수도 있다. 사직 간호사 C씨는 “지금은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병원 밖에서 일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요구안대로 간호사 1명당 환자 5명을 보게 된다면 병원에 다시 취직해서 전인간호를 하고 싶었던 꿈을 갖고 새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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