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불안을 외면한 일방적 제도화 주장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최근 대한약사회가 발표한 ‘성분명 처방’ 관련 입장문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 처방 문제를 두고, 의사사회를 ‘비과학적 선동’으로 규정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건설적 논의를 가로막는 접근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과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삼습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 역시 직역 간 이해가 아니라,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혼란이 과연 해소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1. ‘국가가 허가했으니 모두 동일하다’는 단순 논리는 사실이 아닙니다
제네릭 의약품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는 고령 환자, 다제약 복용 환자, 만성질환자, 소아·취약계층 등에서 제형 차이, 부형제 차이, 복용 순응도 차이가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수없이 경험합니다.
특히 과거에 파킨슨병 치료에 사용되는 레보도파(Levodopa) 제제의 생산 중단으로 다른 약 복용 후 많은 환자들이 부작용으로 고통 받은 사례에서 보았듯이, 약의 제형이나 흡수 특성의 미세한 차이만으로도 약효 발현 시간의 변동, ‘온-오프 현상’ 악화, 운동이상증 증상의 급격한 변화 등과 같은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고령의 환자에서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혼란을 넘어 낙상 위험 증가, 일상 기능 저하 등 직접적인 건강 위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약품은 단순한 ‘성분’이 아니라 환자가 복용하는 구체적 제품입니다. 그 책임은 모든 의료진에게 있고, 일차적으로는 처방 의사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2. 환자 사전동의 없는 대체조제는 결코 ‘환자 중심’이 아닙니다
대한약사회 홍보물에는 “대체조제 시 환자 사전동의 불필요”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습니다.
환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처방된 의약품이 변경될 수 있다면, 이것이 과연 환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입니까?
서울시의사회는 분명히 말합니다. 처방 의약품 변경은 환자 사전 동의가 필수입니다. 처방권의 책임 주체는 의사이며, 최종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의사에게 있습니다. 책임은 의사가 지되, 결정은 제3자가 하는 구조는 의료 윤리와 법적 책임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3. 진정한 환자 중심은 ‘의사가 처방한 약 그대로’ 받을 권리입니다
실제로 약을 복용하는 분들과의 간담회에서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내 병을 가장 잘 아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그대로 받고 싶다.”
환자의 불안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사가 처방한 약을 그대로 수령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고령자, 거동이 불편한 환자, 만성 질환자, 방문진료 대상 환자들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약 배송 제도의 제도화와 선택분업 제도의 도입 역시 진지하게 검토돼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의료기관과 약국을 반드시 분리해 이동해야 하는 구조는, 특히 노인과 중증 환자에게 물리적·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의사가 직접 진료하고 처방한 약을 의료기관에서 바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권을 환자에게 부여한다면, 복약 혼란을 줄이고 치료 연속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직역의 이해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편의성과 안전, 그리고 치료 책임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입니다.
환자의 불안을 줄이는 정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약을 바꾸는 제도가 아니라, 환자가 신뢰하는 의사의 처방을 그대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진정한 환자 중심 정책입니다. 약사회야말로 무엇이 환자 불안을 없애는 길인지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4. 건강보험 재정 논리를 환자 안전보다 앞세울 수 없습니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재정 절감 논리가 환자의 복약 안전과 치료 일관성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접근되어서는 안 됩니다. 의료는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영역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오히려 의료 이용의 혼란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5.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론화가 필요합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자극적 표현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에서 우려를 제기하는 것까지 ‘선동’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을 요구합니다.
첫째, 환자 사전동의 없는 대체조제 홍보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둘째, 성분명 처방 제도화를 논하기 이전에 환자 안전 영향 평가를 공개적으로 실시하십시오.
셋째, 환자들과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포함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십시오.
넷째, 진정으로 환자 중심의 제도를 원한다면, 약 배송과 선택분업 제도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하십시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직역 간 갈등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자 안전과 처방 책임의 원칙이 훼손되는 제도에는 단호히 대응할 것입니다.
진정한 환자 중심은 제도 중심이 아니라 ‘신뢰 중심’입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