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시작해 1년 반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의정갈등은 단순한 인력 이탈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분기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고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다.
특히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교수·개원의·전공의·의대생 등 의료계 내부부터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선결과제로 제시됐다. 의료계가 단일한 입장 없이 흩어져서는 정부와의 협의도, 실질적 변화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의료환경의 근본적 변화 발생을 인정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도 하나된 마음과 정책 제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기조 아래 서울시의사회는 젊은 의사들이 다시 의료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사직 전공의를 위한 임상 연수 프로그램, 의대생 대상 장학금 마련 등 실질적인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다.
Q.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께 가장 우선적으로 기대∙건의하고 싶으신 정책은 무엇인가요?
지난 1년 5개월 동안의 의정갈등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역사적인 사건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의정갈등은 단순히 전공의와 학생이 현장을 떠난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바뀌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의료환경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이런 점들은 국민의 건강, 국민의 생명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향년 5년 동안 의료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책임감을 갖고 의료시스템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공의와 학생들을 현장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완전히 바뀐 의료시스템으로 준비를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의 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대정원 등 한 가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구조적인 것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의료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새 시스템을 준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의정갈등은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에서 시작됐고,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학생들은 아직도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 남아있는 만큼 신뢰회복이 선행돼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의료정책은 전문가와 상의해주셨으면 좋겠고, 세 번째로는 향후 5년 동안에는 일관성 있게, 예측 가능하게 정책을 진행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감한 재정투입이 없이는 현재의 문제 해결은 불가능합니다. 소아과에서 300%의 수가 인상을 요구할만큼, 기피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이 불가피합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합니다.
Q.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 사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전공의와 젊은의사들이 현장을 떠난 원인이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었던 만큼 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초헌법적인 명령이나 압박하는 방식은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 고위공직자 인사에 의료개혁 정책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젊은층이 정부를 신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장관과 차관, 그리고 정부 정책에 따라 바뀔 것 같은데, 실무자 인선에 있어서도 의료계가 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고려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Q. 회장님께서는 의협의 부회장직도 맡고 계십니다. 의협 내부 그리고 외부의 입장에서 현 집행부에 대해 평가해보신다면요?
외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 43대 집행부는 내부 의견 수렴 구조가 굉장히 경직돼있는 것 같습니다. 16개시도의사회처럼 가장 중요한 지역 의사회와도 소통이 거의 안 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내부 입장인 의협 부회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43대 집행부는 결정의 타이밍에 있어서 계속 어긋났던 것 같습니다. 대외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지난 해 12월, 올해 2월 그리고 대선 직전인 5월 말까지가 전공의와 학생들의 트리플링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때 의협이 의료계의 종주단체로서 책임있는 결정이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요새 전공의와 학생들의 목소리가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점점 다른 목소리, 점점 커지는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트리플링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이제 3주도 남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7월 초부터 수업이 재개돼야만 트리플링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6월까지 정책 제시가 없다면 이는 무책임하다고 생각됩니다.
Q.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정부에서 의료계를 대하는 태도는 압박과 탄압이었습니다. 정책에 있어서도 일관되지 못한 방안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신뢰회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일관성과 약속에 대한 이행이 중요합니다.
이번 정부에서는 의료환경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구조적인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정책은 전문가들과 상의해주시고, 정책에 대해 의료계가 꾸준히 믿고, 예측∙확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시해주시면 젊은 의사들을 비롯해 의료계가 새 정부를 믿고 일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 개원의, 전공의, 학생 등 의료계 내부에서도 각자 목소리가 다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의협은 의견을 하나로 모아 하나된 정책을 제안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대화, 협상하면서 정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Q. 의협의 대정부·대국회 관계를 신장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이전에 있었던 ‘의정회’가 부활시켜 누가 활동하든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활동을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힘을 싣고 하나된 힘을 만들 수 있으며, 정치인들로부터도 의료계가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종주단체로서 의협이 하나된 목소리를 만들 수 있는 힘을 내부적으로 길러야 합니다.
Q. 서울시의사회 차원에서 사직 전공의와 휴학 중인 의대생을 위해 지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우선은 법률 행정 등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사직 전공의들이 현재는 개인 병원 등에 취직해있는데, 병협과 상의해 전공의들이 수련 현장에 복귀하기 전에 임상 연수프로그램 등을 준비해보려고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2만원씩 특별회비를 걷기도 했는데, 이것을 활용해 올 하반기 무렵 의정사태를 되돌아보는 백일장 등 하나가 될 수 있는 행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특히 교수들이나 개원가 원장들도 이번 사태를 통해 느낀 점 등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만들려고 하며 이를 전담할 TF도 만들 예정입니다.
의대생 중에서도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등 금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찾겠습니다.
Q.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공의 복귀를 위한 핵심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과거에는 주 200시간 가까이 일하고, 오프도 거의 없었지만 의료현장으로부터 수많은 환자들을 경험하고, 많은 임상경험을 통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케어 이후 의료시스템 왜곡이 일어나면서 제대로된 수련환경을 갖추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소위 BIG5에 있는 전공의들도 대부분 행정적인 업무만 하지, 실질적으로 환자를 보는 것이 제한된 것 같습니다. 수련환경이 변하면서 의료에 대한 직접적인 술기보다는 행정이나 의료의 보조인력처럼만 사용돼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병원들도 환자가 없어 제대로 된 임상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환자, 많은 임상을 경험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과거처럼 전공의와 의대생은 환자를 보고, 최대한 많은 임상을 경험할 수 있는 수련 환경으로 변화돼야 합니다. 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등이 필요합니다.
수련교육의 내용도 바뀌어야 합니다. PA(진료지원간호사)라는 과정이 생기면 전공의들이 PA의 보조인력이 되는 상황이 됩니다. 많은 경험 끝에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얻은 우수한 인력이 아닌, 부실한 교육으로 과정만 마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본적인 의료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수련환경이 좋아질 수 없습니다.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련의 내용이 담보돼야 하고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 안 되면 2차병원이나 로컬 병원에 의해 기초임상 수련 네트워크 과정을 만들어서라도 가능한 많은 임상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합니다.
또 의사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과 의사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 변화를 위해서도 서울시의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 대통령이 고위공직자 ‘국민추천제’를 실시했습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인가요?
대게 복지를 전공하신 분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는 분이 돼야 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의료현안은 우리나라 사회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때문에 정치력도 필요합니다. 과감한 재정 투자를 위해서는 국민들과 정치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치료를 위해 지금보다 더 비싼 치료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분께서 장관이 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사직 전공의 및 휴학한 의대생들께 서울시의사회장으로서 꼭 전달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지난 약 1년 5개월간 가장 힘들고, 외롭고, 고통받은 분들이 전공의와 학생들입니다. 서울시의사회도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어느정도 전달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전공의와 학생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갈등이 만연한데 의료계마저도 각 직역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끈끈했던 선후배 관계, 존경했던 교수님, 사랑하는 전공의∙학생들로 돌아갔으면 좋겠고, 그런 기회가 생길 수 있게 서울시의사회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하나가 돼서 하나의 목소리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싸우고, 발전적이며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가고 국민을 설득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