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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제도권 밖 사각지대 ‘희귀질환’…‘삶의 질’ 위한 국가 지원 절실

직장 등 사회생활 불가… 희귀질환으로 지정 안 돼 지원 전무한 ‘전신농포건선’
‘단장 증후군’ 등 증상 똑같지만 이차성 질환이라는 이유로 희귀질환 등재 불가한 경우도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희귀질환의 ‘관리 사각지대’를 좁히기 위해 국가 지원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희귀질환은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으로서 80% 이상이 유전적 또는 선천성 질환이고, 대부분 치료제가 고가이거나 개발돼 있지 않아 치명적이거나 장애를 초래하며, 경제적 부담이 큰 질환을 가리킨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1165개의 희귀질환이 지정돼 있으며, 희귀질환으로 지정될 경우 요양급여 총액의 10%의 본인부담금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희귀질환으로 지정되지 않아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질환들이 많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의원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미래건강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의 국가 관리 강화방안 모색 토론회’가 3월 6일, 국회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작년 2월 보건복지부는 ‘제2차 희귀질환관리 종합계획(2022~2026)’에서 ‘환자와 가족과 삶의 질 제고’를 비전으로 한 10대 전략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강선우 의원은 개회사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 제2차 희귀질환관리 종합계획이 발표됐지만, 지금도 제도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이 많다. 오늘 토론회를 통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실효성 있는 대안들이 공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재학 회장은 “정책적으로 많은 논의의 장이 마련됐고, 미미하게나마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종합계획이 담고 있는 사업의 목적과 치료현장의 환자들이 경험하는 제도와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우와 그 가족들이 조속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단연 희귀질환 지정과 보험등재 과정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일이다. 오늘 이 자리가 희귀질환의 제도적 지원망 밖에서 어려움을 겪는 환우와 가족들에게도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토론에 앞서 충남대병원 피부과 정경은 교수가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 사례와 환자 중심의 희귀질환 지정체계 필요성’,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김현영 교수가 ‘희귀질환 지정 및 산정특례 적용 한계’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대한건선학회의 교육 간사이기도 한 정경은 교수는 최근 임상 현장에서 진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등록되지 않아 지원받지 못하는 희귀질환의 사례인 ‘전신농포건선’에 대해 소개했다. 이 질환은 온 몸에 고름 물집이 생기며,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정경은 교수는 “전신농포건선은 발병이 매우 드문 질환이며, 보통 판산 건선과는 다르다. 보통 판산 건산에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건선 중에서도 1% 미만으로 국내 3천여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미 5년째 희귀질환 지정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질환은 2023년 현재 희귀질환 지정 재검토 대상으로서 재심의 예정이다. 희귀질환 지정에는 경제적 지원, 체계적 질환 관리, 사회적 인식 개선의 기대 효과가 있다. 다른 피부질환과 비교해 중증도가 더 높지만 국가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전신농포건선의 희귀질환 지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수술이나 다른 질환으로 인해 촉발된 이차성 질환의 희귀질환 등재가 어렵다는 문제와 함께, 희귀질환 지정 제도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김현영 교수는 ‘희귀질환 지정 및 산정특례 적용 한계’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희귀질환 및 중증난치질환에 포함되면 요양급여비용총액의 10%만 부담하면 되지만, 이 리스트에 들어가기가 참 어렵다. 인디언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움직인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부모만 움직이게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현영 교수는 “희귀난치 질환, 특히 지정되지 않은 질환에 걸릴 경우 부모는 일을 할 수 없고,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가정이 무너지게 된다. 진단 불명확, 진단기준 불명확, 이차성 질환이라는 이유라는 등으로 희귀질환지정이 거절되고 있는데, 질환의 특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과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장 증후군’을 소개하며, 선천적으로 장이 짧은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수술이나 다른 질환으로 장이 짧아진 이차성 질환의 경우에는 일차성 질환과 동일한 증상, 질병부담, 고통을 받음에도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20년 전부터 문제점은 인식돼 왔지만,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단장 증후군의 치료제인 테드글루타이드가 미국에서는 2012년에 허가 및 급여를 받아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에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에 등재되지 않아 가격이 너무 비싸 사용될 수 없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희귀질환 지정에 있어 세부적인 검토를 위해 전문가 자문의 풀(POOL)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전신농포건선 환자 A씨가 환자로서 느끼는 어려움을 직접 밝혔다.

A씨는 “질환 자체의 고통도 있지만, 사회적 어려움이 너무 크다. 병이 재발하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 여러 번 퇴사해야 했으며, 퇴사를 강요받으며 좌천된 적도 있다”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전신농포건선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희귀질환 지정과 함께 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희귀질환 지정 제도와 관련 지원 제도를 점차 개선하겠다고 밝히며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들을 소개했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오창현 과장은 “대체 치료법이 없고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삶의 질을 개선해주는 약이라면 경제성 평가를 생략해 등재 절차를 간소화하고, 건보공단과 제약사 간의 약가 협상 기간을 줄여 신속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인 ‘초고가약 위험분담제’를 올해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항암제와 희귀질환치료제에 제한되지만 환자들에게 최대한 접근성을 높인다는 정책 목표를 바탕으로 오늘 나온 두 가지 질환의 약제도 신설 범위에 들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 이지원 과장은 “그동안 희귀질환 심의 후 미지정된 질환에 대해서는 공고 후 24개월 후 재심의를 수행하면서 사실상 3년 이상의 대기 기간이 소요됐다. 이에 작년에 재심의 소요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고 지정 절차 개편을 추진하는 절차 지침을 배포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위원회 구성 확대와 전문가 풀 구성을 보완하고자 올해부터 전문위원회 구성을 10명 이내에서 10~20명으로 확대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희귀질환 지정에 있어 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여러 가지로 검토해서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희귀질환 환자들에 의하면, 희귀질환에 지정된 후에도 병원에서 오래 입원할 수 없다고 해서 요양원에 가야 하지만 요양원에서는 전문 치료인력이 없어 희귀질환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와, 같은 질환이라도 다양한 질환 타입에 대한 산정특례 적용의 어려움에 관한 문제 등이 언급됐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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