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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김택우 회장 “성분명처방 강행은 의약분업 파기 선언”

성분명처방 대신 ‘환자선택분업’ 전환 강력하게 촉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의사협회 회장 김택우입니다. 대한민국 14만 의사를 대표해 인사 올립니다.

저는 오늘, 국회에서 열리는 약사단체 주관 성분명처방 토론회에 맞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특정 직능단체가 직역 이권만을 챙기기 위해 의학적 위험성을 못 본 체하고 추진하는 성분명처방 강제 시도는, 의료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책임한 도발입니다. 우리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전문가단체로서 이를 절대 좌시할 수 없습니다.

첫째, 성분명처방은 의사의 전문적 진료행위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임상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입니다.

의약품의 처방은 단순히 성분명, 즉 화학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환자의 상태, 병력, 병용약물, 흡수율, 부작용 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적정 약제와 용량을 선택하는 전문적인 진료행위입니다.

특정 질환에 있어 동일 성분이라 하더라도 약제마다 약동학적 특성과 임상 반응이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사의 판단 없이 임의로 약제가 대체될 경우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약제 대체 시 발생할 수 있는 차이는 특히 소아, 고령자, 중증질환자, 면역저하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행 제도는 약제 처방을 의사에게 맡기고 그 변경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분명처방을 강제한다면, 임상 현실을 무시한 채 환자가 실제 어떤 제약사의 약품을 복용했는지조차 의사가 알 수 없게 만들며, 처방과 관련해 책임질 사람을 없애버립니다.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둘째, 경제논리만으로 국민건강을 도박판에 올리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또 다른 의료대란의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약사단체는 성분명처방으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예산을 절감하고자 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여론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약사단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책무가 있는 전문가단체임에도, 국민의 위험을 못 본 체하며 예산절감이라는 사탕발림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보건의료전문가단체로서 들 수 있는 적절한 근거인지 심히 의문입니다.

의료의 본질과는 정면으로 배치됨에도 단순한 경제논리로 국민건강을 담보 삼겠다는 약사단체의 발상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나아가 국민건강을 도박판에 올려놓는 이 위험한 정책이, 또 다른 의료대란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다시 한번 명확히 밝힙니다. 의약품 수급불안정의 주요 원인은 정부의 일방적 약가결정 구조, 제약사의 경제논리만을 따진 생산 중단 등 구조적 문제에 있습니다.

이러한 근본적 문제 개선은 외면한 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걸고 갑자기 성분명처방이라는 도박판을 벌이는 것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료전문가단체로서의 본분을 내팽개친 것입니다.

셋째, 성분명처방 강행은 ‘의약분업 파기’ 선언입니다. 만약 성분명처방을 강행한다면, 이는 의약분업 제도 자체를 파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의사의 역할은 환자를 진찰해 진단하고 전문적 판단에 따라 약제를 처방하고 진료하는 것입니다. 약사의 역할은 의사가 처방한 약제를 안전하게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하는 것입니다. 진단과 처방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환자의 질병을 직접 진료하는 의사입니다.

그러나 성분명처방 강제는 이러한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의약분업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의약분업 원칙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러한 입법 시도를 의약정 합의 파기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의약분업 제도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넷째, 처벌을 앞세운 시대착오적 강제 대신 국민 편익을 위한 ‘환자선택분업’으로 전환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성분명처방을 의무화하는 의료법 및 약사법 개정법 안에는 ‘이를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하겠다’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수급불안정 의약품’이라고 지정하기만 하면 성분명처방 위반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의사의 전문적 판단을 정부가 의학적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범죄라고 규정하는 것이며, 세계 어디에도 전무한 비상식적 폭거입니다. 의료계는 결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약 국민의 편익과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한계를 드러낸 의약분업의 틀 속에서 위험한 정책을 강행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시급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환자의 편익과 건보재정 절감을 위해 원내조제 허용을 포함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민이 약국 조제 또는 병·의원 내 조제를 선택할 수 있는 환자선택분업으로의 전환을 즉각 논의해야 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잘못된 성분명처방 강제에 저항해 오늘부터 이 자리에서 대한의사협회의 1인시위를 이어갈 것입니다. 국회와 정부, 그리고 약사단체는 성분명처방 강제 법안 논의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그리고 ‘환자선택분업’ 도입을 통해 국민의 편익을 제고하고 의료의 기본원칙을 회복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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