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연구진(주저자: 오수현, 공동저자: 김계현, 교신저자: 문석균)의 ‘Physician Assistant Legalisation and Conflicts in South Korea: Need for an Approach Based on Lessons from Three Countries’가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for Quality in Health Care(IJQHC) 2025년 10월호(Volume 37, Issue 4)에 게재됐다.
IJQHC는 영국,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발행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지로, Health Policy(보건 정책), Medicine(의학), Public Health(공중 보건)분야에서 Q2(상위 25~50%) 등급에 해당한다.
이번 논문은 전공의 대규모 이탈 사태를 계기로 전공의 노동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국내 의료인력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가운데, 정부가 추진해 온 PA 제도화 논의가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어떤 원칙이 필요할지에 초점을 맞췄다.
연구진은 “한국형 PA 제도는 단기 인력 대체 수단이 아니라 의료시스템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해외 사례 분석을 토대로 법·규제, 교육·자격, 환자안전, 지도·감독, 직역 간 협력 등 다섯 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했다.
논문은 한국의 PA 논쟁이 전공의 공백 문제에서 촉발되었으나, 본질적으로는 의료수요 증가와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국제적 이슈와 연결돼 있음을 지적하면서, 대만·호주·남아공 3개국의 경험을 비교·분석했다.
대만은 2000년대 초 의료인력난 해소를 위해 PA 합법화를 시도했으나, 의료계·간호계 간 합의 부족과 사회적 조정 실패로 결국 제도화에 실패했으며, 2005년 이후 PA는 NP(Nurse Practitioner, 전문간호사) 체계로 흡수되면서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호주는 농어촌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PA 도입을 검토했지만, 역할 불명확성과 의료 질 저하 우려, 의사단체 · 간호노조의 반대 등으로 제도화에 이르지 못했다.
남아공은 ‘Clinical Associate’라는 새로운 직군을 도입해 국가자격·교육과정·업무범위·감독체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3년제 학부 교육을 이수한 인력이 의사의 지도·감독 아래 진료에 참여하도록 설계함으로써 점진적이고 안전한 정착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이들 사례에 비춰 “새로운 인력제도를 부분적·비공식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법적 지위와 자격, 업무범위와 책임, 감독체계 등 제도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갈등과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한국 PA 제도가 환자 안전과 의료 질을 보장하는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설계 원칙을 제안했다.
먼저 법·규제의 명확화를 제안했다. PA의 법적 지위, 자격요건, 업무범위, 책임과 감독체계를 상위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하위법 위임을 최소화해 법적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음으로는 표준화된 교육·자격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인증 교육과정과 교육기관을 지정하고, 국가시험을 통해 교육과정을 이수한 인력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며, 자격 갱신제도를 통해 의료의 질을 담보해야 한다.
또 환자 중심의 업무범위 설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현장 수요, PA 역량, 환자 안전을 우선 업무범위를 설정하고, 주기적 검토를 통해 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어 의사 지도·감독의 단계화도 제안했다. PA의 경력과 숙련도, 업무의 난이도·위험도에 따라 감독 범위와 방식을 단계적으로 차등화하고, 감독의사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해 법적 분쟁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직역 간 협력과 거버넌스 설계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PA는 의사를 대체하는 인력이 아니라 보완하는 인력이라는 원칙 아래, 이해관계자 참여와 소통에 기초한 협력·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PA 제도화에 있어 만능 모델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 국가의 상황에 맞는 고유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성공적인 제도는 안전 · 의료 질·명확한 규율이라는 핵심 원칙을 따르며, 신뢰 구축–시범사업–입법 보완–업무범위 개선이 반복되는 장기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신저자인 문석균 부원장은 “해외 사례는 법 · 제도 인프라와 직역 간 신뢰 구축 없이 PA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거나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한국형 PA 제도도 충분한 소통과 사회적 합의, 고품질 교육 · 훈련, 명확한 법 · 제도적 장치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가 향후 정부의 PA 제도 설계와 관련 입법 논의에서 환자 안전과 의료 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적 기준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